[짬짜미 예산협상]③638조원 주무르는데 예산심사는 겨우 보름…"총량부터 따져야"
사업단위 심사를 넘어선 총량심사 등 필요
편집자주 -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기한을 3주 넘어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됐습니다. 준예산 사태를 피해 예산안이 처리됐으니, 이제 문제가 없을까요? 올해 예산심사는 증액 동의권을 가진 정부·여당과 과반의석을 보유한 야당의 충돌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회 예산심사 제도 전반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예산안이 가까스로 처리됐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올해 문제점은 내년 예산에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편에 걸쳐 국회 예산심사 문제점을 조명하고 해법을 모색합니다.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638조원의 예산을 국회가 심사하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30일 국회법과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국회가 예산안을 심사하는 기간은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1일부터 예산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는 12월 1일이다. 약 90여일간이 시간이 주어진 셈이지만, 실질적인 시간은 이보다 훨씬 짧은 것이 현실이다.
올해 진행된 내년(2023년) 예산심사를 살펴보면 올해 9월 2일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실질적인 심사는 10월 말부터 시작됐다. 국회 농림 축산식품위원회가 10월 27일 예산안 예비심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국회 교육위원회의 경우 11월 16일 되어서야 가장 늦게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그나마 상임위원회 예산심사가 가장 빨랐던 곳은 11월 4일 심사를 마친 국방위원회였고, 국회 운영위원회와 교육위원회는 예산안 심사를 끝내 마치지 못한 채 공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넘어갔다.
9월 초에 제출된 예산은 왜 빨라도 10월 말 돼서야 예산심사에 들어갔을까.
정답은 이 기간에 국정감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정기국회 한가운데 진행되다 보니 국회 의원실과 상임위원회 등은 국감으로 총력전을 벌인 뒤, 숨을 돌린 후 예산안 심사에 나서는 식이다. 이렇게 한 달 넘게 시간을 흘려보낸 뒤 예산안이 심사된다. 하지만 상임위원회 심사의 경우 예산심사는 대부분 감액보다는 증액에 나서기 일쑤다.
예산을 심사하는 상임위와 소관 부처가 의기투합하는 일들이 빈번하다. 올해 일부 상임위에서는 ‘받아도 쓸 데가 없다’는 부처를 상대로 국회의원이 예산을 더 늘려주겠다며 나무라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실 이전 문제 등 쟁점이 없는 한 대부분의 상임위에서는 올해 예산이 대폭 증액된 채 예결위에 넘어갔다.
예결위 전체 회의가 열려도 본격적인 심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예결위 전체 회의는 상임위 예산심사 등을 기초로 예결위원들의 질의와 정부 측 답변으로 진행된다. 국정 방향이나 개별 사업 중심 예산에 대한 질의와 답변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예산안의 감액과 같은 실질적인 예산 심사 작업은, 국회 예결위 예산안 등 조정 소위에서 본격 논의된다.
예산안을 둘러싼 실질적인 줄다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올해 소위는 지난달 17일 시작됐다. 이달 2일이 예산안 법정기한을 고려하면 ‘15일’ 정도가 남은 시점이다.
올해 예산안은 정부가 제출 당시 8435개의 세부 사업으로 제출됐다. 이 사업들은 보름간 얼마나 충실히 심사됐을까. 이 기간이 얼마나 무리한 일정인지는 지난 9월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확인된다. 더불어민주당(당시 여당)의 지난해 예결위 간사를 지냈던 맹성규 의원은 "정기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22년 지출사업 8800여개 중 예결 소위에서 논의된 사업은 1700여개에 불과했다"고 공개했다. 7100개 사업은 국회의 심의조차 받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더욱이 올해 예산심사의 경우 1) 정권교체 후 첫 번째 예산 심사로 국정 운영 방향이 대폭 바뀌었다는 점, 2) 이태원 참사 직후 예산 심사가 시작됐다는 점, 3) 여소야대 국회라는 점 등으로 인해 실질적 심사 규모는 지난해보다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예결위는 잦은 파행 끝에 감액심사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결국, 법이 정한 예산심사를 완료하지 못한 예산안의 남은 틈은 결국 원내대표 간 담판 등을 통해 메워졌다.
시간은 왜 부족한가
일차적으로는 앞서 거론됐던 것처럼 국감이 정기국회 한가운데 있는 것이 시간 부족의 가장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국감 시기를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이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현행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관한 법’은 국감 시기를 정기회 시기가 아니라 ‘정기회 이전’에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단서 조항으로 본회의 의결 시 국감을 실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예외 규정을 이유로 매년 10월에 국감이 진행되고 있다. 예외로 만든 규정이 관행이 된 셈이다. 애초에 만든 법 취지를 국회가 지키지 않은 것이 발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감 시기 등을 조정하자는 내용의 법안은 이미 여야를 막론하고 발의됐지만, 아직 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요인은 결산이다. 국회법 128조의 2에 따르면 결산은 정기회 이전에 심의·의결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결산은 매번 정기국회 기간에 의결되는 일이 빈번했다. 지난해 쓴 예산안에 대해 정부는 5월 31일 결산안을 제출하는데 번번이 결산심사는 정기회까지 넘어와 처리됐다. 2011년 8월 31일 처리된 이래로 결산은 매년 정기국회 기간에 처리됐다. 심지어 2018년에는 내년 예산안이 처리된 뒤, 지난해 결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도 결산은 11월 10일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행법에 따라 국감과 결산만 정기회 이전에 마치게 하더라도 예산을 심의할 시간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국회 예산 심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만 보다 근본적으로 국회 예산심의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보고 등을 받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4월 분야별 재원 배분 계획을 세울 단계부터 국회에 보고하고, 의회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맹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법안에 담긴 안으로, 정부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국회의 참여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예산 전문가인 김광묵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는 "우리나라 예산심사는 세부 사업 구조로 심사되는데, 이 사업들은 이미 사업 필요성 등에 대한 방어구조가 철저해 예산 심사를 통해 손대기가 어렵다"며 "국회 예산 심사는 이보다는 전체적인 총량을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사업단 위 예산을 넘어 총량 단위에서부터 심사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총량 심사 등을 위해 국회 예결위 상설화 등을 담은 국회법을 대표 발의한 맹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있는 재원을 보다 국민을 위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며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국회, 정치인들인 만큼 예산 심의 단계에서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예산 심의 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소야대 상황이 문제라면) 총선 이후 시행되도록 조정한 상태에서라도 개혁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면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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