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예산에 638조 휘청…입법권 밀린 與, 시행령·여론전 기댄다

권호 2022. 12.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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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꼬리를 흔든다.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드는 건 비정상이다. 그런데 요즘 국회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여야는 5억1000만 원짜리 예산을 놓고 막판까지 치받았다.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 비용이었는데, 합의가 더뎌지며 638조원의 내년도 전체 예산 처리가 흔들렸다. 결국 경찰국 관련 예산을 50% 줄이고, 향후 정부조직법 개정 시 대안을 마련하기로 하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합의했다.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을 설치하면서 적잖은 홍역을 앓았다. 사진은 7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맞은편 경찰기념공원에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5억1000만 원짜리 예산안에 여야가 첨예하게 충돌했던 이유를 되짚어보면, 그 근원엔 이른바 시행령 정치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힘이 세진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였다. 야당은 물론, 경찰 내부의 반발이 컸지만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일부개정령안’을 바꿔 행안부 안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필요 인력을 증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윤석열 정부가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관철한 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의 대응 성격이 짙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다수당의 완력으로 아예 관련 법률을 바꿔 검수완박을 추진했지만, 의석수에서 밀리는 여권은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시행령이란 우회로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국회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소수 여당의 한계로 인해 입법권의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우회로였다는 의미다.

거야(巨野)에 밀리는 소수 여권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여론전이다. 여론을 통해 국회를 압박해 이슈를 환기하고, 입법으로까지 끌어가자는 것이다. 28일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그렇다. 9월 스토킹으로 숨진 지하철 역무원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피살 현장을 한동훈 법무장관이 비공개로 찾은 뒤 찬성 여론이 급격히 늘었다.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여야는 이슈가 터질때 마다 서로 질세라 거친 언사를 쏟아낸다. 정치의 언어가 흉폭해지는 건 22대 총선이 1년 남짓으로 다가온 것도 주요 배경이다. 여권에선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5년 내내 끌려다니다 끝난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최근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수사를 놓고 정치권의 입씨름 수위가 높아졌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여당은 “민주당은 국회에서 이재명 방탄을 위한 예행연습 실시했다.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군사작전 하듯 부결시켰다”(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라고 공격했다. 이에 야당은 “윤석열 사단 정치 검찰에게 공정한 수사는 중요하지 않다. 정적을 제거하고 야당을 파괴하면 그만”(박홍근 원내대표)이라고 비난했다. 대선 시절을 방불케 하는 전투적 언사들이다.

권호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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