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만에 보증금 10억 토해냈다…반포 '갭투자' 영끌족 비명

안장원 2022. 12.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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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이 급락하며 집 주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마이너스' 갱신 계약이 속출하고 있다. 뉴시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마이너스' 전세 보증금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서 대표적인 아파트로 꼽히는 래미안퍼스티지. 135㎡(이하 전용면적)가 지난 7월 35억원에 전세 계약했다. 종전 보증금이 45억원이었다. 10억원이 내렸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전·월세 신고 내용이다.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집이 30대가 전세를 끼고 매입한 ‘갭투자’다. 45억원은 지난 5월 54억5000만원에 매수할 때 전세를 놓은 보증금이다. 2개월 뒤 10억원 낮춘 35억원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하루가 다르게 전셋값이 떨어지다 보니 시세에 맞춰 10억원을 되돌려주고 재조정한 것 같다”고 전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집값 급등기 때 크게 늘었던 갭투자가 전셋값 하락 직격탄을 맞고 있다. 많게는 억대에 달하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값에 이어 전셋값도 동반 급락하면서 갭투자 ‘지렛대’가 부러지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영끌’로 갭투자한 30대는 연이은 급락 쇼크를 받아 패닉 상태다.


'마이너스' 전세 갱신, 지난해의 6배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보면 전세계약 갱신 보증금이 종전보다 내려간 ‘마이너스’가 늘고 있다. 8~10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신고에서 130건 정도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여건의 6배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셋값이 5.45% 하락했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1.75%) 이래 14년만의 하락세인데 하락 폭이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 1998년 외환위기(-22.41%) 이후 가장 크다.

전셋값 시계는 1년 반 전인 지난해 6월 정도로 돌아갔다. 단지에 따라서는 2020년 하반기부터 계약한 전세가 다시 계약하면서 전셋값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

자료: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마이너스 전세 갱신을 들여다보면 갭투자가 적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2020년 이후 갭투자할 당시 임대차 3법 도입 등으로 치솟으며 주택 구입 부담을 줄여줬던 전셋값 급등이 지금은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말 계약한 성북구 종암동 종암2차SK뷰 119㎡ 보증금이 6억3000만원이었다. 올해 1월 10억8000만원보다 4억5000만원 내려갔다. 같은 달 보증금에 1억2000만원만 보태 12억원에 갭투자한 집이다.

9월 초 보증금이 8억5000만원이었던 성동구 금호동 벽산 84㎡의 종전 보증금이 지난해 11월 8억5000만원이었다. 30대가 갭투자로 14억원에 매수했다.

매매 실거래가가 뚝뚝 떨어지는 잠실에서 전셋값도 주저앉고 있다. 8~10월 전세 갱신 계약 중 종전 보증금보다 1억원 이상 내린 47건 중 잠실 일대가 15건을 차지한다. 잠실주공5단지 81㎡가 6억5000만원에서 4억원으로 2억5000만원 하락했고, 위례신도시 위례아이파크 100㎡, 잠실엘스 84㎡, 리센츠 84㎡ 등이 2억원가량씩 내려갔다.

전셋값 하락 속도가 빨라지며 보증금 마이너스 액수도 커졌다. 이달 래미안퍼스티지 84㎡가 2년 전보다 4억5000만원 낮은 13억원에 재계약했다.

이달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84㎡가 이전보다 3억4000만원 낮은 8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30대가 2020년 12월 보증금 12억3000만원을 안고 20억7000만원에 산 아파트다. 이 주택형 실거래가 이달 17억원까지 내려갔다.

매수자는 평가 금액이긴 해도 뒤늦은 갭투자로 집값 3억70000만원, 전셋값 3억4000만원 등 총 7억1000만원을 손해 본 셈이다.

송파구 잠실동 트리지움 84㎡도 이달 이전보다 4억7000만원 싼 8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코로나 이후 영끌로 갭투자한 30대가 집값·전셋값 동반 급락 충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억대를 돌려줄 여력이 없으면 내린 보증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준다”며 “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월세 비중. 처음으로 40% 넘어서

전셋값 하락으로 월세가 크게 늘고 있다. 전세계약이 끝날 때 전셋값이 내려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월세보다 전세대출 이자가 더 많이 나가는 고금리, 전셋값 하락, 현금 확보가 중요해진 경기 침체 등이 맞물려 월세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자료: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월세 비중이 이달 48.9%로 50%에 육박했다. 연 단위로 보면 올해 42.2%(잠정)로 통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대 초반 공급자 우위의 임대차 시장에선 금리가 내려가자 집주인이 전세금 이자보다 나은 월세를 원해 월세 비중이 커졌지만 지금은 금리가 높은데도 시장 판도가 바뀌며 수요자가 원해 월세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갱신 계약에서도 전세의 월세 전환이 급증했다. 전세에서 월세 전환 비율이 지난해 8~10월 4.7%에서 올해 같은 기간 7.5%로 상승했다.

전셋값 하락은 전셋값 상승 폭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율을 떨어뜨렸다. 전셋값이 많이 오르지 않아 굳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청구권 사용 비율이 지난해 8~10월 67.9%에서 올해 같은 기간 59.2%로 10%포인트 가까이 내렸다.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전세 갱신 계약에서도 3건 중 한 건의 전셋값 상승률이 5% 이하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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