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50년, 라흐마니노프가 사랑받는 이유

류태형 2022. 12.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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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클래식의 거장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한국의 18세 청년이 피아니스트들에게 최고의 난곡으로 손꼽히는 노도 같은 작품을 서핑하듯 뛰어넘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포츠머스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을 때가 올해 우리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한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2023년은 바로 그 곡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탄생 1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거구에 일반인의 두 배인 엄청나게 큰 손의 소유자였고 기교도 뛰어났죠. 그래서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연주하기 어려운 곡들을 썼죠.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 1일 제정 러시아의 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둘 다 유복한 귀족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9세 때 악화일로였던 가정 경제는 파산으로 이어졌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죠. 어머니는 아들을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전학 보냅니다.

음악원 시절 그의 연주는 점차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891년 18세 때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과에서 1위에 입상합니다. 또 그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했습니다.

20세기 최고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작곡가다. [중앙포토]

라흐마니노프는 1895년 교향곡 1번을 완성했습니다. 1897년 글라주노프 지휘로 초연했는데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그가 신경쇠약과 무기력증에 걸렸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모스크바의 정신과 의사인 니콜라이 달 박사로부터 최면 요법을 받았고 치료에 힘입어 그의 신경증은 점차 회복됩니다. 1901년 그의 걸작 중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완성됩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과 어울리는 도입부의 피아노 터치가 참 인상적입니다. 영화·드라마·CF에 사용된 피아노 협주곡 중 인기곡이죠. 특히 2악장을 주제로 사용한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는 유명한 팝 명곡입니다.

1902년 라흐마니노프는 사촌 여동생 나탈리아 사티나와 결혼했습니다. 1904년부터 2년 동안 그는 볼쇼이 극장에서 지휘자로 일했습니다. 슬슬 작곡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라흐마니노프는 1906년부터 3년 동안 드레스덴에 머물면서 교향곡 2번을 완성하고 초연해 격찬을 받았습니다.

올해 6월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우승한 임윤찬. [사진 반 클라이번 재단]

1909년부터 미국 각지를 연주 여행하며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합니다. 1912년에는 가곡집 Op.34를 작곡했는데 마지막 곡이 유명한 ‘보칼리제’입니다. 1917년 라흐마니노프는 10월 혁명의 물결이 휩쓰는 러시아를 떠납니다. 1918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때부터 피아니스트로 활동합니다. 한동안 창작이 뜸하던 그는 1926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작곡하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1931년에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별장을 짓고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교향곡 3번을 작곡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가까워져 오자 스위스에서도 머물 수 없게 됐고 최후의 작품인 ‘교향적 무곡’은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작곡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42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베벌리 힐스로 이주합니다. 1943년 3월 28일, 70세 생일을 앞두고 자택에서 사망한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뉴욕 켄시코 공원묘지에 안장됐습니다.

21세기에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19세기의 낭만적인 정서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곡이나 가곡은 낭만주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마음에 비친 감상을 음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깊은 의미를 띠는 대신 쉽고 친숙하며, 직접적으로 다가와 기억에 오래 남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앞으로도 그 대중성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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