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특명: Y2K 탈출 대작전
복고나 레트로가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사실 너무 오래 권좌에 올라 있어 이제는 좀 낡게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원래도 낡았는데 낡게까지 느껴진다는 게, 마치 낡음에 낡음을 더한 더블 낡음 같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시대정신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대인의 기본이다. 언제쯤 지나가려나 흘겨보는 이들의 시선이 무색하게, 레트로는 최근 수년 사이 더욱 단단하고 뾰족해졌다. 그 날카로운 유행의 선봉에 잊혔다고 여겨진 그 단어, Y2K가 있다.
20여년의 세월 속에서 Y2K의 의미와 위상이 극적으로 변한 건 유명 포털사이트의 기사 검색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1999년 착륙 유도등 정지로 인한 공항 대혼란이나 컴퓨터 오작동이 초래할 핵 발전소 방사능 유출을 과장된 문장으로 경고하는 무수한 기사들 속에서, Y2K는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의 Y2K는 곧 ‘세기말 감성’이다. ‘감성’은 즉 ‘그 시절’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뜻이다.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감성. 이 온통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Y2K가 연도를 뜻하는 Y(year)와 1000을 뜻하는 K(kilo)의 합성어로 세기말 전 세계를 긴장하게 했던 밀레니엄 버그의 준말이라는 걸 굳이 강조하는 건, 금지다. ‘라떼’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 일이다.
짧은 크롭 티셔츠, 로라이즈 진, 컬러풀하고 볼드한 액세서리, 반짝이 스티커로 뒤덮은 폴더폰으로 만든 화려 찬란한 이미지가 패션·광고와 SNS를 주름잡는 사이, 음악계도 쉴 리는 없었다. 수년째 사그라지지 않는 90년대 팝 펑크와 그런지·이모 코어의 인기는 세기말 청춘을 대표하는 아이콘 에이브릴 라빈까지 원형 그대로 부활시켰고, 한국 대중음악계도 그 거대한 파도를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Y2K 감성을 ‘느낌적인 느낌’ 그대로 즐기는 젠지가 즐비한 K팝 신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2022년 (여자)아이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예나(YENA)와 우즈(WOODZ)가 발표한 신곡들만 모아 들어봐도 충분히 짚어낼 수 있는 흐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행이란 돌고 도는구나’ 하는 한가한 소리를 하며 푹신한 소파에 깊게 몸을 묻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지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왔다. 겨울 노래 시즌인 연말을 맞이해 그룹 NCT DREAM이 H.O.T.의 ‘CANDY’를, 미래소년이 SS501의 ‘Snow Prince’를 리메이크해 발표하는 데까지 이르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동물적 촉이 왔다.
이 은은한 불안함에 경고 버튼을 누른 건 다름 아닌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KBS 가요대축제: Y2K’였다. 타이틀마저 선명하게 장식한 세 글자 Y2K는 3시간이 넘는 쇼를 그야말로 ‘장악했다’. 로고와 기본 화면 프레임을 비롯한 모든 요소가 세기말 감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픽셀 아트와 네온 컬러로 채워졌고, (여자)아이들, 아이브, 있지, 르세라핌, 뉴진스 등 올해를 뜨겁게 보낸 K팝 대표 그룹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각자의 Y2K 가요를 재해석했다. 아마도.
아마도라고 한 건 참여한 아이돌이 없는 시간을 쪼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완성했을 무대에서 그들이 가진 에너지보다 기획자의 취향이 더 선명히 읽혀 버린 탓이다. 맞다, 어쩌면 이건 그 시대를 산 내가 무심코 읽어버린 밑그림에 가깝다.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서 Y2K의 ‘헤어진 후에’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무대를 보며 몇 번을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날 걸 후회했다. 몰랐다면 좋았을걸. 무대를 꾸린 멤버 대부분이 해당 곡이 유행할 때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그 풍경은 사장님 취향에 맞춰 준비한 신입사원들의 피와 땀 어린 장기자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Y2K 감성’의 초점이 Y2K가 아닌 ‘감성’에 있다는 걸, 이제는 Y2K를 직접 산 이들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모두가 Y2K 비상탈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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