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 사용처 증빙 못하는 공익단체

김원배 2022. 12. 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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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흔히 시민단체로 불리는 곳이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원법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획재정부에서 ‘공익단체’로 지정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후원자가 내는 기부금에 세액공제를 해줄 수 있다.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업의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구성원 상호 간에 이익 분배를 하지 않는다와 같은 요건만 갖추면 된다. 정부가 못하는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본래 취지를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곳이 있다. 지난달 중고생이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를 열어 논란이 됐다. 이곳은 지난해 3월 비영리민간단체로 서울시에 등록했다. 지난해 6월엔 기획재정부에서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공익단체로 지정됐다.

「 보조금 유용은 납세자 우롱 행위
민간 지원하되 사후 관리 엄격히
정부·지자체 정보 공유 확대해야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난해 결산을 보니 서울시에서 4880만원, 여성가족부에서 500만원 보조금을 받았고 서울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에서 495만원 지원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비가 3314만원, 후원금이 329만원인 것을 볼 때 보조금과 지원금이 더 많았다.

지난 27일 서울시는 이 단체에 대한 등록 말소 행정 처분을 한다고 발표했다. 지방선거 당시 몇몇 교육감 후보와 정책 협약이나 정책간담회 등을 하며 지지·지원했고, 특정 후보와 정당 반대 활동을 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2조 제3호에는 사실상 특정 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 또는 반대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서울시는 촛불중고생시민연대에 올해 지원한 보조금 1600만원에서 부적정한 집행이 발견돼 전액을 환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증빙자료 제출과 소명을 요구했지만 단체가 불응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 단체에선 “정치적 활동엔 자발적 후원금을 썼고 보조금은 원래의 목적대로 썼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엔 등록이 취소되면 공고를 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통보하게 돼 있다. 앞으로 지원법을 고쳐 일정 기준 이상의 환수 조치를 받거나 등록이 말소되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알려야 한다. 보조금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 드러났는데 기재부가 지정하는 공익단체로 남아 있다는 건 난센스다.

2020년 큰 논란이 됐던 정의기억연대 사례를 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고 폭로하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는데, 기소된 윤미향 의원 재판은 아직 1심이 나오지도 않았다.

정의연의 전신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다. 2013년 현대중공업이 낸 지정기부금 10억원을 받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안성힐링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던 정대협이 201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평가를 받았는데 사업 C등급, 회계에선 가장 낮은 F등급을 받았다. 시설 활용도가 떨어지고 서류와 영수증이 미비했다고 한다.

공동모금회는 정대협이 2년간 지정 기부를 받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기부를 받아 다른 단체에 나눠주고 감시하는 게 공동모금회의 역할이다. 다만 평가 내용을 정대협과 기부자인 현대중공업에만 알렸을 뿐 정부 부처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이 지난 2020년 6월 모금회의 평가 결과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감독기관이나 주무관청에도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건복지위에 상정은 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당시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복지부 장관이 이미 모금회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있고, 모금회가 개별 단체의 감독 기관을 확인해서 통보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모금회가 모든 기관에 이 내용을 통보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기부 제한까지 받은 단체가 있다면 대외적으로 공시하는 게 맞다. 이미 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는데 다른 곳에서 보조금 타고, 기부금 혜택까지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영리민간단체의 자발적 활동은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받아서 쓰고 제대로 증빙을 하지 못한다면 공익단체나 시민단체라 불릴 자격이 없다. 이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과 선량한 기부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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