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문화재전쟁] “백두산은 중국사 일부” 한국 흔적 지우기 속도전
장백산문화론의 속셈
2017년 중국의 10대 발굴에 뽑혀
2014년부터 최근까지 백두산 자락에 위치한 옌볜 조선족자치주 바오마청(寶馬城)에서 아주 특이한 제사터가 발굴되고 있다. 사방 100m 정도에 높이 1m가 안 되는 야트막한 담 안에서 다양한 기와와 유물이 발굴되었다. 중국 발굴단은 이 유적을 1175년 금나라 황제가 백두산에 올라와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결론지었다.
백두산은 수천 년 전부터 인근의 모든 주민이 숭앙하는 성산이었다. 백두산 일대에는 고구려의 원 세력들이 압록강을 따라 살았고, 그 동쪽에는 옥저인이 있었다. 그리고 1000여 년이 지난 뒤 여진도 이 산을 숭앙했다. 만주 주변에 살던 모든 주민에게 신령스러운 산이었다는 점이 다시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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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여년간 왜곡 수위 높여
동북공정 이상의 역사적 파급력
금나라 유적을 백두산 상징 삼아
북한 ‘백두혈통’ 주장과 충돌도
고구려·발해에 집중된 한국 사학
만주 일대로 관심 영역 넓혀가야
」
바오마청 유적에서는 발해 기와들이 발견되어서 애초에 발해의 것으로 알려졌다. 발해의 성이나 제사터를 여진 시대에도 다시 쓰는 것은 흔한 일이니 이상할 것이 없다. 바오마청 인근에는 발해의 요새가 있었고, 그 이름 또한 이곳 조선족 사이에 발해의 장군과 그가 타던 말과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했다.
바오마청 발굴은 2017년 중국의 10대 발굴에 선정될 만큼 중국 전역에서 화제였다. 중국의 수많은 화려한 유적이 경쟁하는 중에 금나라의 작은 제사터가 10대 발굴에 포함된 것은 오직 고고학적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 백두산 일대를 한국사에서 제외하려는 일련의 작업과 부합하는 발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심지어 백두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나라와 관계없는 중국 춘추시대의 봉선(封禪) 의식과 연결하면서 백두산 일대는 중국의 역사라는 것을 근거로도 활용한다.
백두산 관광지 개발과 연계 확산
백두산 일대가 태곳적부터 한족(漢族)의 일부였다는 ‘장백산문화론’은 2000년대 초반 동북공정과 함께 등장했다. 다만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의 국가사업인 동북공정과 달리 지역 정부와 일부 역사가 사이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장백산문화론은 백두산 일대 관광지 개발과 연계되며 지금도 확산 중이다. 중국은 이 지역에 공항을 건설하고 역사 유적을 정비하는 한편 백두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2017년 ‘장백산(Changbaishan)’이라는 이름으로 잠정 등재를 한 상태다.
장백산문화론은 간도 일대는 물론 연해주, 그리고 북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동북공정 이상의 파급력을 지닌다. 하지만 국내에서 관심이 별로 적다. 설마 백두산이 중국사와 무슨 관계냐며 황당해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공정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중국이 내세우는 근거는 바로 ‘만주족’의 역사에 있다. 만주에는 고구려·발해 계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간도 일대는 산악지대가 발달했기에 동북쪽 산맥을 중심으로 사냥을 주로 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이들은 고대에 숙신과 읍루로 불렸고, 고구려와 발해 때에는 말갈로 우리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여진족을 거쳐서 현재의 만주족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산속에서 호전적이며 사냥을 즐기던 사람들을 ‘숙신’ 계통이라고 한다. 반면 농사를 짓고 정착을 했던 고구려-발해 계통은 ‘예맥’ 계통이라고 한다.
수천년간 우리와 함께 살아와
흔히 숙신 계통의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북방 지역에서 털옷을 입은 오랑캐로 흔히 표현된다. 하지만 고려 이후 여진족은 크게 융성하여 중원으로 진출해서 금나라를 세웠고, 이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300여년간 이어졌다.
물론 중국에 진출한 사람들을 한국사로 간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전통적으로 예맥(고구려와 발해 계통)과 함께 수천 년간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실제 함경도 일대에는 일제강점기까지 여진족 마을이 남아 있었으며, 북한강 중류인 춘천 중도 레고랜드 부지에서 말갈의 무덤과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즉, 산악 지형이 발달한 동해안 일대의 백두대간과 그 주변에서 살면서 적응한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이들을 ‘오랑캐’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국의 중국사 연구는 대부분 중원 지역에 몰려있고, 한국사 연구는 주로 한반도 남부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국내에서 여진이나 말갈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공백 상태에 가깝다.
중국의 장백산문화론은 이러한 한국사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백두산 일대는 산악지대이고, 말갈과 여진 계통 주민이 많이 산다는 점을 들어서 그 주인공을 현대 한국사에서 소외된 만주족의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만주족은 한국과 다른 역사이기에 ‘중국 한족의 역사’라는 논리를 세웠다. 한국이 순수한 ‘단일민족의 역사’에 집착하는 동안에 중국은 팽창적인 역사관을 내세워 백두산 일대를 중국의 역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고구려 성벽도 만리장성에 편입
중국의 백두산 공정은 지난 20여년간 만주사·한국사를 향해 치밀하게 준비해 온 작업이다. 동북공정(2002~2007)으로 실마리를 연 중국은 곧바로 장성보호공정(2005~2012)을 추진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중국 북방의 만리장성을 넘어서 실크로드 신장성(新疆省)과 만주 일대의 성벽 흔적을 모두 장성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전체 만리장성은 기존의 10배가 되는 2만㎞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백두산 일대의 고구려와 청나라 성벽과 봉수대도 모두 만리장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 작업은 순수한 학문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대 중국의 영토를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중국 대중에 백두산 일대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것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지금도 장백산문화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관련 이론을 정립한 왕멘후라는 학자는 최근 저서에서 압록강 유역에서 기원한 고구려·옥저·부여, 나아가 연해주 일대도 장백산문화로 규정했다. 동북공정(한사군과 기자조선)으로 만주와 한반도 서쪽을 중국사에 포함했다면,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도 중국사에 편입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나아가 백두산을 중심으로 남쪽은 북한과 이어지니 사실상 북한 전체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토대가 된다.
중국과 접경하며 백두산을 양분하는 북한은 김일성의 세습가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백두혈통’을 내세운다. 장백산문화론은 북한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셈이다. 이렇게 동북공정으로 시작된 중국의 한국사에 대한 사업은 장백산문화론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중국은 최근 ‘장백산만주족박물관’을 세우면서 백두산은 만주족의 역사라는 것을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 도움 안 돼
한국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과 일부 연구자(우석대 조법종, 한경대 윤휘탁 교수 등)를 제외하면 장백산문화론에 대한 대응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동북공정에 불같이 일어섰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의아한 현상이다.
우리의 소극적인 태도는 고구려·발해·부여까지만 한국사로 한정하는 전통적인 역사관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 물론 여진이나 말갈을 한국사로 동일시하거나, 정치적인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백두산을 민족의 상징으로 숭상하면서 정작 그 일대에서 함께해 온 여진과 말갈을 이방인으로 여기고, ‘단일민족’ 또는 순수한 ‘한국사’에 집착하여 약간만 이질적이어도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한 우리의 대응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이 시작되던 때와 달리 지금 중국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으로 주변 지역에 대한 역사 분쟁을 확대하고 있다. 동북공정 과정에서 보았듯이 일회성 혹은 감정적인 반발은 큰 실효가 없다. 섣불리 달려들기보다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해 할 것이다. 과거사 왜곡을 통해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의 의도는 장백산문화론이 처음이 아니며, 또 마지막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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