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국내 유일 PET장비 제작…치매진단용도 곧 나와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38〉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이재성 대표
이 대표는 공대 출신이다. 1992년 서울대 전기공학부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공대 입학 점수가 의대보다 높던 시절이었다. 학부 시절 의학에도 관심이 있어 3학년 겨울방학에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에서 인턴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게 인연이 돼, 대학원은 전기공학과 대신 의용(醫用)생체공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했다. 인턴 시절 한국 최초로 서울대병원에 들어온 양전자방출단층촬영시스템(PET)이 이후 그의 전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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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 출신 서울의대 교수의 도전
세계 첫 디지털 PET 핵심기술 개발
인공지능 이용한 영상분석 특화
“뇌 PET분야 글로벌 시장 이끌 것”
고령화 가속화로 시장수요 늘어
“국내 대기업, M&A 뛰어들어야”
」
의대 박사급 제자들과 함께 창업
그는 서울대에서 의용생체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5년 모교로 돌아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가 됐다. 2009년 세계 최초로 현대 디지털 PET의 핵심기술인 실리콘광증폭기(SiPM)를 활용한 PET를 개발했다. 디지털 PET는 기존 아날로그 PET보다 해상도와 영상 품질이 뛰어나다. 2016년 창업한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이런 연구·개발(R&D)의 결과물이다. 지난 28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서울 성수동 SK V1타워 17층에 터를 잡은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을 찾았다. 이 대표가 교수로 있는 의대 연구실의 박사 제자들이 임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Q :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어떤 회사인가.
A : “디지털 양전자방출단층촬영시스템(PET)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 회사다. 스타트업이지만 국내에서 PET를 개발하고 제조·판매하는 회사는 우리가 유일하다. 2016년 창업 이후 최근까지 실험용 쥐와 같은 소동물용 PET를 생산하고 있지만, 고령자를 위한 치매 진단용 PET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뇌 PET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기업이 되는 게 1차 목표다.”
(※회사 사무실 안쪽에 높이 2m쯤 되는 의료장비가 놓여 있었다. 의자 위쪽으로 구멍이 크게 뚫린 원통 모양의 장치가 달려 있었다. 의자에 앉아 원통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으면 뇌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장비다. 내년 안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는 것이 목표다. 대당 가격은 100만 달러(약 12억7000만원), 기존 대형 PET 장비의 4분의 1 수준이다.)
지멘스·GE 등의 틈새시장 공략
Q : 왜 치매환자용 PET인가.
A :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치매 환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노인의 약 10%가 치매 환자다. 2050년이 되면 3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의 주종인 알츠하이머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병의 진행 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뇌 PET 검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멘스·GE·필립스 등 의료장비를 장악하고 있는 해외 의료장비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나름의 틈새시장이다.”
Q : 차별화된 혁신기술은 뭔가.
A :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PET 중에도 디지털 PET 기술에 특화된 회사다. 2009년 서울의대 핵의학교실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실리콘광증폭기(SiPM) 기반 디지털 PET 기술을 상용화한 거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보다 공간 해상도와 분해능 등 여러 분야에서 성능이 좋아졌다. 반도체 기반이라 MRI와 동시에 찍는 게 가능하다. 또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핵의학 영상 분석도 우리만의 차별화한 기술이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달 국제전기전자공학회 의료영상기술공로상을 받았다.”
(※PET와 MRI는 각각 다른 장점이 있다. 암세포를 촬영할 때 PET는 세포의 분자적인 특성을 주로 본다면, CT나 MRI는 병변의 모양이 어떻게 변했는지 해부학적 정보를 주로 보는 장치다.)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
Q : 왜 창업을 선택했나.
A : “세계 최초로 실리콘광증폭기 기반 PET 기술을 개발하고 나니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외국 회사들이 많았다. 그중엔 이스라엘의 MRI 스타트업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PET 기술을 이전받아 MRI와 PET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소형 동물용 영상장비를 만들고 싶어했다. 마침 2015~2016년 스탠퍼드대 방문교수로 가게 된 것도 창업에 영향을 미쳤다. 스탠퍼드는 창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가장 뛰어난 학생·연구자들이 창업하고, 그다음 사람들이 구글·페이스북 등에 취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R&D를 사업화할 거면 직접 창업해서 제품을 공급하는 게 기술이전보다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해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에 우리 PET 제품을 납품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Q : 굳이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A : “이스라엘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네트워크가 단단하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 강점이 많다.”
Q : 교수직과 스타트업 대표직을 병행 중이다. 1인 2역이 힘들지 않을까.
A : “사실 무척 고단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도 일하고,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다. 학교와 회사 양쪽을 다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병원 핵의학과 소속이기에 의료장비 도입· 관리, 영상분석 등 병원 업무·연구도 아주 바쁘다. 다행인 건 의과대학 강의 부담이 다른 곳보다 좀 덜한 편이다. 한 학기에 대학원 수업 한두 과목과 학부 실습수업 정도만 하면 된다.”
법무·노무·세무 등 지원 필요
Q : 그럼 언제 회사 일을 하나.
A : “대학 규정상 일주일에 8시간만 회사 일을 겸직할 수 있다. 성수동 회사에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일한다. 보통 화요일이나 수요일 온다. 대신 필요할 때는 화상회의도 많이 한다. 그동안 같이 연구하고 일해온 후배이자 제자들이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회사는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의 직원은 26명이다. 이 중 서울대 의과학 박사인 고근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김경윤 이사 등 의과학 박사만 5명에 달한다. 이재성 대표 역시 의공학 박사다.)
Q :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닌가. 창업한 교수들이 팍팍해진 삶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A : “창업 전에도 바쁘게 살기는 했다. 학회나 협회 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였다. 그렇게 만든 시간을 회사에 투자하는 거다.”
Q : 대학 당국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A : “예전보다 창업 지원이나 분위기가 좋아진 편이긴 하다. 하지만 교수들은 경영해본 경험이 없다. 법무·노무·세무 등 회사를 처음 세울 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창업 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 많은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대학 기술지주회사 인력도 늘려야 할 것 같다. 교수가 창업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제한된 점도 풀어줬으면 한다. 그때그때 창업 지원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되는 것이, 나중엔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 R&D 수준 크게 향상
Q : 정부에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겠다.
A : “최근 투자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모태펀드 규모를 줄이고, 민간시장 위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지금껏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이 계속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부 R&D 과제가 많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R&D 수준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스타트업들의 연구 수준도 굉장히 좋아졌다.”
Q : 그 외 바람이 있다면.
A :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에 가장 약한 부분이 기술형 혁신창업 기업을 받아줄 수 있는 인수·합병(M&A) 시장이 작다는 거다. 창업 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상장 전이라도 삼성·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인수해 스타트업의 몸집을 키우면 글로벌 시장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국내 대기업도 이제 이 같은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신성장 엔진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오전 10시 조금 넘어 시작한 사진 촬영과 인터뷰는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온 오후 12시 40분에야 끝났다. 이 대표는 혜화동 서울의대로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섰다. 점심은 건너뛰었다. 다시 교수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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