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가피한 전기요금 인상, 산업 넘어 안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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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에 전쟁까지 겹쳐 에너지 가격 급등
취약 계층 살피는 구체적 보완책 마련해야
내년 전기요금이 대폭 오를 전망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내년 전기요금 인상 수준에 관해 “인상 요인이 참 많다”며 “가계·기업에 큰 충격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당 수준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오늘 중으로 1분기 요금 인상안이 발표된다. 산업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한전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내년 한 해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kWh(킬로와트시)당 51.6원으로 산출됐다. 올해 전기요금 인상액이 kWh당 19.3원인 점을 고려하면 2.7배나 높은 수준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졌다. 최근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르고 있어 서민의 삶은 물론 기업들도 버텨내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두면 한전의 경영 악화를 넘어 국가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는 심각하다.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27조7000억원에 달한다. 돈이 부족했던 한전은 그간 전력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그 자리를 메워 왔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발행한 한전 전력채 규모는 30조4000억원, 지금까지 발행해 온 회사채 중 상환해야 할 금액으로 따지면 67조3000억원에 이른다. 가뜩이나 국내 채권시장 상황이 어려운데, 한전이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채권 수요를 빨아들여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채권 금리 상승까지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기요금은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올 한 해 전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당장 러시아 천연가스관에 목매달고 있던 서유럽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도 기름과 천연가스 가격 폭등에 고통을 겪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전기요금 급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한술 더 뜬 상황이다.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적 경제위기 탓도 있지만, 지난 5년간 이념적 탈(脫)원전에 집중했던 전 정부의 실정 탓도 크다.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이를 메우기 위해 가스 발전 비중을 대폭 올렸다. 그러고도 표를 의식해 전기요금 올리기를 꺼렸다. 이념과 포퓰리즘으로 밀어붙인 잘못된 정책이 가계와 기업의 살림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다.
사실 그간 우리나라는 값싼 전기에 중독돼 있었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가장 저렴하다. 산업용 요금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전력소비는 일본과 독일 대비 2.5배, 영국 대비 3.5배에 달한다. 이제 전기요금이 대폭 오르면 경제 주체 곳곳에 고통이 심해질 것이다. 정부의 세심한 정책이 필요할 때다. 공공부문의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며,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 수 있는 구체적 보완책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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