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색깔 바꾸라구요? ‘핑크 질주’ 새해에도 계속됩니다
“2022년이요? 제 평생의 자랑이자 안줏거리죠!”
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보내는 소감을 묻자 쇼트트랙 스타 곽윤기(33·고양시청)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길거리 곳곳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28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핑크빛 머리를 길게 기른 곽윤기를 만났다.
곽윤기는 한국 쇼트트랙의 든든한 맏형이다. 2010 밴쿠버겨울 올림픽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8 평창 대회와 올해 2월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곽윤기는 33세의 나이로 베이징올림픽에 나섰다. 그의 세번째 올림픽 도전이었다. 곽윤기는 남자 5000m 계주 결선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와 주특기인 인코스 돌파 기술을 선보인 끝에 은메달을 따냈다. 취재석 이곳저곳에서 “역시 곽윤기”라는 탄성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당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곽윤기는 “경기 중반까지 금메달은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대 경쟁 상대였던 러시아 선수들이 한참 뒤로 밀렸고, 중국 선수가 11바퀴를 남기고 넘어졌다. 캐나다만 잡으면 우승이 가능하다고 봤다”면서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날이 흔들리더라. 아, 김칫국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맏형의 리더십은 빙판 밖에서도 빛났다. 당시 개최국 중국이 편파 판정으로 물의를 빚자 그는 심판 판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신 발언으로 박수를 받았다. 곽윤기는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한 것뿐이었다. 국민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운동한다는 놈이 핑계를 댄다는 시선도 있었겠지만, 당시 판정은 너무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언젠가부터 곽윤기란 이름에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유튜브 구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셀러브리티(명사)가 됐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초청을 받아 전 세계 셀러브리티들과 함께 ‘홈런더비 X(홈런과 수비 등으로 승부를 겨루는 이벤트 경기)’에도 출전했다. 곽윤기는 “정말 감사할 뿐이다. 많은 대회를 치렀지만, 이렇게 인기가 좋은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쇼트트랙 그리고 빙상 종목 전체가 사랑받는 느낌이라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022년은 나, 곽윤기로 시작해서 축구 국가대표 조규성 선수로 끝났다는 말이 있더라. 기분이 좋기는 한데 마무리를 빼앗긴 느낌이 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곽윤기는 현재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지난 5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왼쪽 허벅지를 다쳤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고 했다. 곽윤기는 “국가대표로 뛸 때는 정작 잘 몰랐는데 막상 물러나서 보니 태극마크에 대한 간절함을 다시 느낀다”며 “포기란 없다. 4번째 올림픽 출전을 위해 다시 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곽윤기는 이제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겨울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그는 “내가 다음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령 국가대표 기록을 세우게 된다. 30대의 나이에도 핑크빛 머리를 휘날리며 빙판을 가르는 모습이 멋지지 않을까. 물론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윤기에게 새해에는 핑크색 헤어스타일을 바꿀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핑크색 머리 색깔을 바꾸라는 말은 내게 인코스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인코스를 그만 파고들고 싶을 때 머리색을 바꾸겠다”고 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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