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비' 덮친 방음터널 참사…"화재 취약" 전문가 수차례 경고
29일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5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희생이 커진 것은 방음 자재가 열과 불꽃에 취약해 불이 순식간에 번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16년 방음터널 내 방재 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방음판 자체의 불연 성능 기준은 지침에 담기지 않아 사실상 사각지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과 방재전문가 등에 따르면 이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IC 인근의 약 800m 구간의 방음 터널에는 투명 플라스틱인 아크릴수지(PMMA)가 방음판 자재로 사용됐다. 도심을 지나는 고속도로에 설치되는 방음터널에는 통상 PMMA나 폴리카보네이트(PC), 강화유리가 방음판 자재로 활용된다. 이중 PMMA의 가격이 가장 낮아 초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반면 안전성은 가장 떨어진다. 한국도로공사 산하 도로교통연구원이 2018년 공개한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세 가지 자재 중 PMMA의 열분해 온도(300℃ 전후)가 가장 낮았다. 또 실제 모의실험에서 화재로 방음판이 녹아 떨어지더라도 PMMA는 계속 불에 타는 특징을 보였다.
불이 쉽게 붙고 빨리 녹는데, 녹아내려도 계속 타기 때문에 불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셈이다. 이때문에 연구진들은 PMMA 방음재를 쓰면 다른 차량에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방음 터널에 불이 붙으면 480~3400℃까지 터널 내부 온도가 치솟는다는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를 고려하면 화재 시 PMMA를 쓴 터널은 순식간에 불구덩이가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번 사고의 화재 영상과 생존자들의 증언 등에 따르면 트럭에서 처음 난 불이 방음 터널로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터널 전체로 번졌다. 일반 콘크리트 터널과 달리 방음재로 옮겨붙은 불이 서행하거나 후면부에 정차하던 차량으로 번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비슷한 사례가 2020년 8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하동IC 고가차도에서도 발생했다. 이곳도 PMMA 소재를 썼는데 당시 새벽 시간에 불이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방음터널 200m 구간이 소실됐다.
방음터널의 방재 기준은 2016년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처음 도입됐다. 기본적으로 소화설비, 자동화재탐지설비, 피난구 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방음 자재의 불연 기준은 없다. 합성수지로 분류되는 방음판은 합성수지에 요구되는 소방청의 방염성능기준만 준수하면 된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그동안 방음터널의 방음재 불연 기준 문제를 여러차례 지적해왔다. 2019년 4월 한국방재학회에서 발표된 연구 보고서는 “방음터널의 화재안전성과 관련된 설치 및 품질규정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음터널은 다 가연성 재료를 사용해 화재시 콘크리트 터널보다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도로교통연구원 연구진도 보고서에서 방음 자재 재질 기준으로 ▶투명 방음판의 열분해 온도는 400℃이상 ▶흡음형 방음판의 흡음재는 준불연 이상의 난연 성능 갖출 것 등을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방음 터널 설치구간은 계속 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민자 고속도로를 제외해도 13개의 방음터널이 설치됐다. 이후 수도권을 비롯해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도로에 방음터널 설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도로교통공사는 자체 규정을 개정해 새로 짓는 방음터널엔 PMMA를 쓰지 않지만 2019년까지 지은 터널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구간은 2017년 12월 개통한 민자도로다. 이런 민자도로가 최근 늘고 있는데 관리회사가 이런 규정을 가졌는지에 대해 국토부는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창훈·함민정·신혜연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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