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터지듯 車 펑펑 터져…영화 터널처럼 사람들 내달렸다"
“터널 안으로 진입하니 앞이 굉장히 안 보이더라고요. 느낌이 이상해서 문을 열어 보니 매캐한 냄새가 났어요. 어느새 터널 안이 하얗게 됐고요.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온통 까맣게 변했습니다.”
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한 오후 1시49분 터널안을 지나던 이현석(53)씨는 “119와 통화하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큰 화마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너무 놀라 힘이 쫙 풀렸다”며 아비규환(阿鼻叫喚)된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마지막 심정으로 ‘하늘에 맡기자’는 식으로 달려 나왔는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라며 “간간이 창문에 나 있는 작은 문틈을 통해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라고 말했다.
차량 견인을 위해 현장 진입을 시도했던 견인업자 서모(35)씨는 “불길이 너무 거세 119 구급대가 터널 안으로 못 들어갔고 안에 있던 차들이 미사일 폭발하듯이 하나둘씩 터졌다”고 말했다. 서씨는 “터널 앞에 있던 자동차들은 역주행하거나 후진해 돌아가고, 터널 안에선 차를 버리고 대피하는 사람이 많았다”라며 “급하게 대피하느라 휴대전화와 지갑을 두고 온 사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 50대 남성은 동승자인 친구를 놔둔 채 혼자만 대피했다며 울었다고 한다. 진화된 뒤 터널 안에선 버려진 차량 40여대가 발견됐다.
다른 견인업자 30대 남성 김모씨는 “완전히 배우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
「터널」
그거였다”라며 “사람들이 뛰면서 대피하느라 넘어지고 난리였다”라고 말했다. 터널 밖 갓길에선 어린 아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콜록댔다고 한다. 한 60대 남성은 얼굴이 새카맸고, 패딩 점퍼가 불 때문에 거의 녹아내렸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처음 트럭서 불…큰 일 아니라 판단한 차 이어지며 화 커진 듯
소방당국은 터널 안을 달리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발생한 불이 곧이어 터널 구조물에 옮겨 붙으면서 대규모 재난 사고로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폐기물 트럭에 불이 붙은 지 15분쯤 뒤 승용차를 몰고 터널에 진입했다는 강모씨는 “처음엔 불이 나고 연기가 보였지만, 큰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며 “주변 차들 운전자들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하지만 터널에 들어간 뒤 몇십m를 운전했는데, 검은 연기가 100m 달리기 하는 선수처럼 엄청난 속도로 덮쳐왔다”며 “그러자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뛰거나 차량을 돌려 터널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천시 주민 노모(67)씨는 “사고 당시 방음터널 바로 밑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폭발 소리가 엄청 크게 났고 몇 분 후에 불이 치솟았다”라고 말했다. 노씨는 “열기가 엄청 뜨거웠고 계속 펑펑 소리가 났다”라며 “파편이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시뻘건 불과 시커먼 연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확산했다는 설명이다. 열기가 고가도로 밑까지 전달됐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남서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비상교육 신사옥 신축 현장 사람들도 놀랐다. 당시 작업 중이던 박모(60)씨는 “펑펑 소리가 마치 가스통 터지는 것 같았다”라며 “작업자들이 다들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웅성웅성했다”라고 밝혔다.
건설현장 바로 인근의 과천 제이드 자이 주민들도 사고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김기홍(55)씨는 “바람이 아파트 쪽으로 불었는데, 그래서 불이 빨리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단지까지 유독 가스가 퍼져 관리사무소에선 주민들에게 “창문을 열지 말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장에서 북동쪽으로 2km가량 거리인 서울대공원에서도 사고 순간을 감지한 시민이 많았다. 조주야(70)씨는 “연기가 우리 쪽으로도 밀려왔고, 매캐한 냄새가 났다”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방음 터널 안 차량 4대에서 사망자 5명을 발견했다. 얼굴에 화상을 입는 등 중상자는 3명, 단순 연기 흡입 등 경상자는 34명으로 집계됐다.
김민중·심석용·김홍범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근 사진도 있는데…이기영 운전면허증 사진 공개된 이유 | 중앙일보
- "우리 아빠, 얼마나 뜨거웠을까"…방음터널 참사 세모녀 오열 | 중앙일보
- 쓰레기 도로 쏟아지자 "차 세워"…미화원 도운 男, 홍석천이었다 | 중앙일보
- '축구황제' 펠레, 암투병 중 별세…딸 "편안하게 쉬세요" | 중앙일보
- "영상 속 여자, 너지?"…아내 성인배우로 의심하는 의처증 남편 | 중앙일보
- 멀리 갈 필요 없다…해외에도 소문난 서울의 일출·일몰 명당 | 중앙일보
- "600만원 감기약 쓸어갔다"…명동 약국 털어가는 그들 정체 | 중앙일보
- 슬쩍 고친 법안, 與 뒤늦게 좌절했다…법사위장 내준 野빅픽처 | 중앙일보
- 두달만에 보증금 10억 토해냈다…반포 '갭투자' 영끌족 비명 | 중앙일보
- "中실험실서 코로나 유출" 외면받은 음모론, 외신 주목한 이유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