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페르시아어 가르친 유대인, 살기 위한 거짓말
[이학후 기자]
▲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포스터 |
ⓒ 영화사 진진 |
▲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는 중이다. 실제 인물을 다룬 영화로는 <쉰들러 리스트>(1993)와 <피아니스트>(2002)가 유명하다면 가상 인물을 다룬 영화로는 <인생은 아름다워>(1997)와 <사울의 아들>(2015)이 주목을 받았다. 최근작에선 <조조 래빗>(2019), <페인티드 버드>(2019), <레지스탕스>(2020) 등이 각각의 화법으로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고발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건 거짓말을 하는 유대인과 페르시아어를 배워 독일을 떠나고 싶어 하는 독일인 장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은 기존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과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조명한다. '생존하기 위해 가짜 언어를 만든 남자'란 발상은 실로 창의적이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제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을 받은 독일의 전설적인 각본가 볼프강 콜히세의 단편 소설 '언어의 발명'을 원작으로 삼았다. 볼프강 콜히세는 친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되 디테일을 새롭게 추가하여 '언어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영화의 각색 과정에서 관리자 신분의 유대인(카포)에게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게 된 학생이란 소설의 설정은 독일군 장교와 수용소에 붙잡혀 온 유대인 포로로 크게 바뀌었다.
메가폰은 장편 데뷔작 <모래와 안개의 집>(2005)으로 제7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오르고 <인 블룸>(2007), <바이 미>(2017)를 연출한 바딤 피얼먼 감독이 잡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유대인이 독일 파시스트들과 그 협력자들의 끈질긴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와 행운, 빠른 두뇌 회전,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페르시아어 수업>은 질의 '거짓말'을 통해 긴장감을 구축한다. 질은 매일 수십 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전쟁의 공포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이 게임이라 말했던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를 연상케 하는 '거짓말'의 서사다.
관객은 필사적으로 단어를 만들고 암기하는 질을 보며 그가 거짓말을 들키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이 외에도 영화는 질이 페르시아인이 아니라고 계속 의심하는 독일군 병사, 수용소에 새로 온 페르시아인 등 질을 위험에 빠뜨릴 장치를 마련하고 끊임없이 벼랑으로 몰아세운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인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영화는 독일군을 괴물이 아닌,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짝사랑 상대를 빼앗기자 질투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그린다. 코흐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흐는 질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며 친밀감을 드러내고 옷과 음식을 주는 친절을 베푼다.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인간적인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코흐를 비롯한 독일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한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인 '악의 평범성'이다. 바딤 피얼먼 감독은 "여러 인물의 숨겨진 면모들을 담아내고 싶었다"라고 밝힌다.
▲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제는 '기억'이다. 질은 코흐로부터 수용소에 들어오는 포로들의 명단을 작성할 것을 명령받고 그 일을 계기로 포로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든다. 질이 외운 2840개의 이름은 역사의 비극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은유다. 영화는 강조한다. 기억하고 기록하라고.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 섹션 공식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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