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병역비리' 의료계로 수사 확대…프로축구 선수, 배우도 연루

하준호, 김홍범 2022. 12. 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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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뇌전증(간질) 병역면탈’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남부지검이 의료계로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병역비리 합동수사팀 확대와 함께 병역기피자에게 허위 진단서를 떼어 준 의료기관 종사자까지 엄단하라고 지시하면서다.

서울남부지검 병역비리 합동수사팀이 29일 이원석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수사팀 확대를 위한 전문 수사관 파견 등을 계획하고 있다. 뉴스1

대검찰청은 29일 “이원석 총장이 대검에서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으로부터 대규모 병역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을 직접 보고받고, 병역비리 합동수사팀을 확대하고 병무청과 긴밀히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시했다”며 “아울러 공평하게 이행돼야 할 병역의무를 면탈한 병역기피자, 검은돈으로 신성한 병역 의무를 오염시킨 브로커와 의료기관 종사자 등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법 집행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병역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의 척도인 만큼 이를 해치는 행위에 가담한 자라면 누구든 엄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현재 병역비리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은혜)와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이 이달 초부터 합동수사팀을 꾸려 수사 중이다. 이 총장은 이날 “대검 반부패강력부·과학수사부를 중심으로 디지털 포렌식, 감정, 법리 검토 등 필요한 지원을 하라”고 지시했다. 대검은 전날(28일) 이 사건 지휘라인을 형사부에서 반부패강력부로 바꾸고 전문 수사관을 서울남부지검에 파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내에서도 검사·수사관 등 추가 인력이 합동수사팀에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병역브로커' 김모씨는 포털사이트 전문가 중개 서비스에 '1:1 VIP 방문출장 상담예약' 상품을 30만원에 판매했고, 총 235회 상담이 이뤄졌다.

이번 사건은 병무청 특사경이 허위 뇌전증 진단서 발급 등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다수의 사례를 포착하면서 시작됐다. 특사경의 경우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기 때문에 초동 수사 때부터 검·경 협력이 가능했다. 전문 ‘병역 브로커’의 존재가 밝혀지고 이들을 통한 병역기피 가담자가 수십명에 이르자 검찰은 아예 합동수사팀을 꾸리고 지난 21일 브로커 중 한 명인 행정사 구모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다른 브로커인 행정사 김모씨의 경우 불구속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뇌전증 환자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감면받도록 도운 뒤 한 사람당 많게는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의료계 관계자들이 브로커와 짜고 조직적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이날 찾아간 병역브로커 구씨·김씨의 서울 역삼동·반포동 사무실은 실제로는 공유오피스일 뿐 이들이 상주하는 행정사무소가 아니었다. 이들은 이곳의 주소지만 빌려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건물 호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포털사이트 전문가 중개 서비스나 블로그 등을 통해 ‘병역의 신’ 등의 이름으로 자신을 홍보한 뒤, 이를 보고 온라인 상담을 요청하거나 전화로 연락하는 의뢰인을 이곳 공유오피스 내 회의실에서 만나 병역면탈 방법을 안내했다고 한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매달 한 두 번 정도 젊은 남성과 1대 1 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젊은 남성과 회의실을 잡아 쓰는 걸 본 적이 있다”며 “곧 본사에서 이들과의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이 지난 28일 자신의 SNS에 병역기피 가담 사실을 시인하는 글을 올렸다. 사진 한국배구연맹·인스타그램


프로배구·프로축구 이어 배우도 연루


병역기피 의심자 중엔 의사·법조인·고위공직자 등 사회 유력층 자녀들은 물론 프로축구 K리그 주전급 선수와 20대 배우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연루 사실이 알려진 프로배구선수인 조재성(27·OK금융그룹)씨는 전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저는 병역비리 가담자”라고 혐의를 시인했다. 조씨는 “당장 입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포털사이트에 입영 연기에 대해 검색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포털사이트가 인증하는 전문가를 알게 됐고, 군 병무민원 전문상담사와 온라인 상담을 했다”며 “그 행정사는 입대 연기는 물론이고 병역 면제도 가능하다며 바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중략) 그렇게 병역비리라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 가담하게 됐다”고 썼다.

하준호·김홍범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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