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물가 폭탄 맞았는데…에르도안 "225만명에 조기연금"

박소영 2022. 12.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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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내년 6월 대선을 앞두고 연이은 ‘퍼주기 정책’을 펴고 있다. 28일(현지시간)에는 정년제한 요건을 폐지해 200만명 이상의 근로자가 곧바로 은퇴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기 연금 수령자가 갑자기 늘면서 극심한 물가상승으로 신음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경제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도안 "정년제한 폐지, 225만명 은퇴 가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26일 수도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각료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존의 정년제한을 폐지하겠다”면서“225만명이 즉시 은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기존 정년은 남성 60세, 여성 58세로 각각 이때부터 퇴직해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정년제한이 폐지되면 조기 은퇴자가 몰리고 연금 수급자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튀르키예의 연금 수급자는 1390만명이다. 새로운 제도로 225만명이 곧장 퇴직한다면, 연급 수급자는 약 1615만명이 된다. 전체 인구(8500만명)의 5분의 1 정도가 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새로운 제도로 인한 비용이 얼마일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금 재정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튀르키예의 최저연금은 민간 부문 근로자는 2147리라(약 15만원), 자영업자는 1922리라(약 13만원), 공무원은 2705리라(약 18만원)였다. 최저연금으로만 따져보면 정년제한 폐지로 최소한 3000억~4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해진 셈이다.


퍼주기 선심 정책, 내년 대선 승부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여당 AKP 지지자들이 지난 11월 27일 이스탄불 경기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경기장 관중석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상화가 전시됐다. AFP=연합뉴스
에르도안 정부의 퍼주기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2일에는 내년 최저임금을 월 8500리라(약 57만원)로 올리기로 했다. 지난 7월 인상된 5500리라에서 55% 높아진 수준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한다면 또 한차례 최저임금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로이터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 조치와 관련해 “내년 6월 예정된 대선과 총선 등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년 6월 18일 대선에 다시 출마할 예정이다. 승리하면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이어가게 된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그는 2014년 튀르키예 사상 최초로 치러진 직선제 대선에서 당선됐고, 2018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2017년 개정된 헌법상 튀르키예는 5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중임 중 조기 대선을 하면 5년 추가 임기가 가능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조기 대선을 치러 또 이기면 이론적으로는 최장 2033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고 집권당은 주장한다.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1일 “내년 대선에서 마지막으로 지지를 부탁한다”며 다음 임기를 끝으로 물러날 것을 시사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극심한 경제위기로 지지율 추락


지난 2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한 환전소에서 사람들이 돈을 교환하고 있다. 연초 1달러당 11리라 수준이었던 환율은 최근 1달러당 18리라를 기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최근 지지율은 하락세다. 중동 전문 매체 알모니터가 이달 초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은 38%에 그쳤다. 2018년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2018년 총선 때 4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던 AKP 등 여권 연합의 지지율도 최근 32%로 떨어져 야권 연합의 지지율(36%)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현재 튀르키예에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경제를 꼽았다. 튀르키예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기준금리 인하 정책으로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84.4%를 기록했다. 실제 물가상승률은 정부 통계보다 2배 이상 높다고 AFP는 전했다.

현 정부의 퍼주기 정책이 물가상승률을 더욱 끌어올려 경제를 계속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제이훈 엘긴 튀르키예 보아지치대 경제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런 경기 부양책의 효과는 3~4개월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지난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유죄 판결과 정치적 금지에 반대 처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어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재집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정적의 정치생명을 끊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막강한 경쟁자로 꼽혔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지난 14일 공무원 모욕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2년 7개월의 징역형과 정치활동 금지 처분을 받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간 이런 방식으로 여러 차례 정적을 숙청하거나 재판에 넘겨 이번 판결에도 그가 배후에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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