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혁신파크 방 빼라' 요구... 아직 할 일 많은데"
[차원 기자]
▲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자리한 서울혁신파크 |
ⓒ 차원 |
지난 26일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2층 서울혁신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윤명화 센터장의 표정엔 상심이 가득했다. 현재로서 그는 2015년부터 이어온 서울혁신센터의 마지막 센터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60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를 포함한 코엑스급 초대형 융복합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밝히며 서울혁신파크는 내년 10월까지 '방을 빼'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입주기업들과 시민단체, 중간지원조직들이 하루아침에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원래 이곳은 질병관리본부, 서울 보건원으로 불리던 곳이었죠. 충북으로 이전한 이후 당시 오세훈 시장이 여길 어떻게 개발할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박원순 시장이 들어오게 되고, 박 시장은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곳을 사회적 기업들과 시민단체, 또 주민들에게 돌려주고자 서울혁신센터, 파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 처음 입주단체들을 모집했는데요. 당시에는 굉장히 상황이 열악했어요. 옛날에 실험실로 쓰던 건물들이고 하니, 냉난방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요. 그런 환경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8년 동안 저탄소 사업 1천여 개를 포함한 10만 개의 사업을 하고, 400만 명의 시민들과 함께하며 약 9억 6천만 원의 환경적 성과를 냈으니 대단한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 평균 공원 이용객도 1천여 명이나 되고요."
▲ 서울혁신파크를 관리하는 서울혁신센터 윤명화 센터장 |
ⓒ 차원 |
"그런데 지금은 한 100개 단체가 남았네요... 중간지원조직도 절반 정도 줄었고요. 다들 새로운 살길을 찾아 이곳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예 폐쇄된 건물들도 있어요. 특히 청년청에는 많은 스타트업 청년 단체들이 입주해서 자유롭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고 사업을 했었는데, 지금 1년째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청년청의 폐쇄로 다른 입주기업들도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예산삭감도 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예산 지원 없이 공공성을 띤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때는 사업비가 30억 가까이 내려온 적도 있었는데요. 그때는 정말 많은 사업과 도전을 해볼 수 있었죠. 그러나 제가 2020년도에 이곳에 왔을 때 6억, 올해는 3억으로 깎였다가 내년에는 1.5억이 배정됐습니다. 기후와 생태에 관한 중요한 사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제대로 된 지원이 어렵게 돼 안타깝습니다."
작년 9월 오세훈 시장의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가 시민단체 ATM기로 전락했다"는 발언도 단체들을 크게 위축시켰다. 오 시장에 따르면 10년간 1조 원이 시민단체로 갔다는 것인데, 윤 센터장은 이에 대해 "대학 연구소에 지원한 돈까지 다 포함한 금액"이라며 "1조 원이 시민단체로 들어왔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NGO 사업은 정말 뼈를 깎으며 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예전처럼 이런 일을 하면서 활동비도 없이 사비를 써가며 했다가는 지속가능하지 못합니다. 시민단체도, 사회적 기업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나 지금도 많은 활동가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혹은 그보다도 적은 돈을 받으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죠. 그런데 ATM이라고 표현을 하면...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는 윤명화 센터장 |
ⓒ 차원 |
예산삭감은 혁신파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8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을 지낸 윤 센터장은 최근 서울시와 시의회가 삭감한 혁신교육지구 예산에 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제가 시의원으로 있을 때 혁신교육지구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학교와 지역사회에 적극적인 지원을 했죠. 그리고 지금은 지자체, 교육청이 함께하는 꽤 안정적인 구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강북에 자리한 구들의 경우 교육 환경이 혁신교육을 통해 상당히 좋아졌거든요. 아이들의 자존감이 이전에 비해 많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과 지역 활동가들도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 예산삭감으로, 이들이 이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니 있으니 정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지역사회와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고요."
코엑스급 초대형 융복합단지가 들어오는 혁신파크 부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윤 센터장은 크게 3가지 지점을 우려했다. 교통 혼잡, 자연 훼손, 그리고 현재 혁신파크에 남아 있는 구성원들의 거취 문제다.
"지금도 통일로는 많이 막히는 구간이잖아요. 그래도 고양시에서 서대문까지 30분이면 가긴 하는데, 그런 융복합단지가 들어온다면 지금보다 2배 넘게 차가 막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북한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연경관이잖아요. 많은 서울 시민들이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여기에 60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지금처럼 어디에서나 북한산을 볼 수 없게 될 겁니다. 공사하는 동안 엄청난 소음과 분진이 발생함은 물론이겠죠. 특히 이곳 혁신파크는 많은 어르신들과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 많이 사랑해주시는 공간입니다. 이렇게 넓은 도심 속 공원은 흔치 않은데... 시민들의 자연 속 쉼터가 사라지니 정말 아쉬워요.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될 우리 직원들입니다. 내년 10월에 다 나가라고 하니, 다들 멘붕이 온 상태죠. 계속 서울시에 항의하고 시의회에도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서울시는 '알아서 하라'는 입장입니다. TBS가 저렇게 넘어가는 것을 보니, 우리는 뭐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입주 단체들과 우리 직원들은, 일단 해볼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볼 겁니다. 2025년 하반기에 첫 삽을 뜨겠다고 하니, 그전까지는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업 등 우리가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아직 많거든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공원 곳곳에서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몇몇 건물은 이미 폐쇄되어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과거의 에너지는 온데간데없이 철거만을 앞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지난 8년간 서울시 혁신을 지원하는 플랫폼이자 지역 주민들의 쉼터로 역할을 한 서울혁신센터와 서울혁신파크. 서울시의 지원 중단과 개발계획으로 이제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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