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야에 깃발 꽂은 작곡가 되고 싶어요"
[이규승 기자]
작곡을 전공했지만, 그가 국악관현악곡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해 아창제 수상자들 중에서 작곡가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가 유일했다. 작곡 도중에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직접 무대에서 연주를 겸하는 것은 흔치 않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유럽에서는 흔하지만) 리코더리스트를 협연자로 내세운 것이 대부분의 관객에겐 생소하다.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성찬경(33) 작곡가는 남들이 밟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 스타일이다.
오는 1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를 앞두고 그를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인 올해 2월. 대한민국 창작관현악의 산실인 '아창제'에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연이어 선정됐다. (관련기사: 다른 듯 같은 두 작곡가가 국악을 대하는 마음)
서양음악을 공부하며 국악을 선보였던 첫 외도에서 대한민국의 대표 창작음악제에 선정되는 놀라움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 만에 연이어 성공의 축배를 들어올린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차 보였다.
"지난 1년간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국악관현악곡은 지난 아창제가 첫 무대였어요. 처음에는 마냥 신났다면, 두 번째는 무대를 통해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런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곡을 써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성찬경 작곡가는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협동과정 작곡전공 석사학위를,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부 때는 작곡과 이론을, 석사 때는 뮤지컬을 창작하는 과정을, 박사 때는 뉴미디어음악학을 전공했다. 뉴미디어 음악학이란 영상음악, 댄스음악, OST 등 뉴미디어 분야의 실용음악을 가리킨다. 학부 때부터 국악과 수업을 일부러 찾아서 들을 정도로 새로운 영역에 끊임 없이 도전하는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를 지난 27일에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성찬경 작곡가 |
ⓒ 아창제 |
- 대중을 공부하면서 국악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창작 분야에 베이스를 두다보니 예술가의 경계는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국악 부문에 선정된 5명의 작곡가들 중 이성현 작곡가도 후배다. 그도 서양음악, 현대음악을 하면서 국악관현악곡을 쓴다. 꼭 국악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곡가들이 계속 도전해서 좋은 작품을 만든다. 나도 주전공은 아니지만 다행히 모교에서 국악과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 작년에 처음 도전해 성공하고 이번에 두 번째 다시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동안 주력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초·재연했다. 내년에는 더 많이 할 예정이다. 나름 국내 뮤지컬계에 최초로 3부작인 <디아길레프>를 초연했다. 3년 전에 <니진스키>를 초연했고, 올해는 재연작을 무대에 올렸다. 거대한 러시아 예술가 1탄이고, 그 2탄이 '디아길레프'라는 예술 경영가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올해 2월에 초연작이 공개됐는데 아창제 하루 전날에 무대에 올랐다. 이 극장 갔다가 그 다음날 다른 작품 리허설에 가고 정신이 없었다.(하하) 두 번째는 야심차게 준비한 <태권 날아올라>라는 K뮤지컬인데, 태권도를 소재로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내세운 작품이다. 한국의 대표 콘텐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작품으로 지난 6월에 한 달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연했다."
- 국악과 관련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없었나?
"지난 12월 16일,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로부터 위촉 작곡가로 부름을 받아 정기연주회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현대무용가 류장현 선생님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이었는데, 한웅원 작곡가랑 둘이서 <다시 갑시다>라는 공연의 전 작품을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아창제가 맺어준 인연이었다."
▲ 제13회 아창제 협연무대 중 성찬경 작곡가가 직접 연주했다. |
ⓒ 아창제 |
-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리코더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삘릴리'>를 소개해달라.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리코더 협주곡이다. 리코더 음색은 학창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리다. 전 세계를 강타한 드라마 <오징어게임> OST에서도 그 악기가 가진 정서와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곡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입에 물어봤던 가장 친숙한 악기이기 때문이다. 유년인, 유년이었던, 유년이 될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기억의 습작'이기도 하다."
- 이번 작품을 만들기위한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이번 작품은 9분 정도 연주된다. 작곡을 시작한 것은 6월쯤으로 기억한다. 작품을 쓴 기간은 2주 밖에 안된다. 마감(8월 말)에 맞춰서 직전에 집중적으로 썼다. 그런데 곡을 쓰기 위해서 소재를 찾기 위한 시간이 길었다. 나름 역사적인 팩트(사실)를 다뤄야하기 때문에 조사를 하는 시간도 상당히 걸렸다."
- 대편성에서 보기 힘든 '리코더'에 관한 곡으로 관심을 모은다.
"리코더는 1960년대 교육현장에서 '피리'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1973년 제3차 교육과정에서 국민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에 필수 악기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된 악기다. 곡을 관통하는 선율 모티브는 동요 <기러기>(미국 민요의 아버지 S. Foster가 원곡자)와 민요 <도라지>다. 두 곡 모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곡들이다. 특히 <기러기>는 리코더(피리) 실습곡으로 소개되는 중요한 곡이다. 이와 더불어 해당 교과서 64쪽 실습곡의 리듬 패턴을 재해석하여 감각적인 도입부를 만들었다."
- 리코더와 국악관현악의 만남이 신선하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리코더가 주는 친근함과 노스탤지어(향수)에 국악관현악이 전해주는 전통의 정취를 더하여 보다 다채로운 색채를 표현했다.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대중과 거리를 좁히고 국악관현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곡 전반에서 경기도당굿, 동해안별신굿, 진도씻김굿의 무속장단을 적극 활용했다. 경쾌하고 민첩한 소프라노 리코더와 목가적이고도 부드러운 음색의 알토 리코더를 교차해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 왜 리코더를 찾기 시작했나?
"앞서 언급했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었다. 처음에 나오는 OST 중 그 강렬한 리코더 소리를 듣고 이 악기가 주는 정서와 힘을 대번에 느꼈다. 그래서 이 악기로 하면 대중과 호흡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리코더가 가진 추억을 자극하는 색채랑 전통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이 둘이 만난다면 굉장히 신선한 음악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협연자로 남형주 리코더리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후보자들이 있었는데, 그가 출연했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고 결심했다. 워낙 대중적으로 각인되어 있으니까. '설마 이 분이 요청을 하면 해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연락했다. 마침 아창제에 당선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협연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전에 봤던 <유 퀴즈> 영상이 떠올라서 SNS를 통해 연락을 했다."
- 리코더가 연주의 분야로 잡혀있나?
"리코더 전공이 4학제 학부 과정으로 개설된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다. 리코더는 역사적으로 바로크 시대에 연주하기 적합한 악기다. 바로크라는 고음악의 대표 악기이다. 교육과 학습용으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데, 연주 세계 내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한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만 가도 그렇지 않다. 유럽은 바로크 음악이 활발하게 연주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리코더 전공이 훨씬 많고 가르치는 사람도 많다."
- 지금 연습이 막바지인가?
"남형주 리코더리스트는 20대 초반의 젊은 연주자인데 현재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다. 그런데 일본은 1월까지 학기가 계속된다. 그래서 일정을 조율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 본인도 너무 하고 싶은데, 중간 과정이 힘들었다. 사실은 대면으로 만나보지 못하고 줌으로만 했다."
▲ 제13회 아창제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한 성찬경 작곡가 |
ⓒ 아창제 |
- 다음에 시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창제는 세 번까지 도전할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것은 뮤지컬 영화다. 워낙 만들기 어려운 장르여서 손쉽게 대작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이미 미국은 '라라랜드'라는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지금 한창 홍보 중인 뮤지컬 영화인 '영웅'의 결과도 궁금하다. 사업에선 최초가 중요하다. 이런 뮤지컬 분야에서 깃발을 꽂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영상이랑 무대랑 전혀 다르다. 서로 다른 분야를 만족시키면서 장르간의 이원화도 없고 하나로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다."
- 두 번째 공연을 불과 며칠 앞두고 솔직한 기분은 어떤가?
"첫 번째 아창제는 너무 꿈꿔왔던 무대였다. 마냥 즐겁고 신났지만, 이제는 두 번째로 선정되니까 책임감이 뒤따른다. 단순히 내 곡을 무대에서 발표한다는 생각을 떠나서 이런 무대를 두 번 밟는 작곡가가 가져야할 책임감이 생겼다. 그래서 오선지를 쓰는 사람으로서 악보가 내 손을 떠나 훌륭한 지휘자, 감독, 연주자에게 달려있지만 어려운 시간을 내서 오는 관객들을 위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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