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왕따’ 러시아, AFC 합류 여부 31일 결정…亞축구 판도 바뀌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이후 국제축구계에서 왕따 신세가 된 러시아가 환경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다. 사실상 모든 대회 출전 길이 막힌 유럽축구연맹(UEFA)을 떠나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새 출발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러시아축구협회(RFU)는 UEFA를 탈퇴하고 AFC에 가입하는 방안을 놓고 오는 31일 집행위원회 투표를 진행한다. 이와 관련해 알렉산더 듀코프 러시아축구협회장은 “우리는 유럽 대회에 나설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만 있다면 다른 방법을 고려해야한다”면서 “유럽 무대에 머무는 것의 장점을 잘 알지만, 우선은 선수들이 뛰는 게 중요하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러시아는) 다음 4년 간도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축구 클럽 절반 이상이 AFC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아시아는 40억 명의 인구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중인 거대 시장”이라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축구 또한 마찬가지다. 카타르월드컵 유럽 예선 도중 참가 자격을 상실했고, 2022~23시즌 UEFA 네이션스리그 및 2024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24) 조 추첨에도 배제됐다.
기존 UEFA 바운더리 안에서 전쟁 대상국인 우크라이나와 직·간접적으로 마주치는 게 껄끄러운 러시아는 차제에 유럽을 떠나 아시아에서 새출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러시아는 영토가 유럽과 아시아에 폭넓게 걸쳐 있어 지정학적으로 소속 대륙을 옮기는 데 문제가 없다.
러시아 축구가 유럽을 떠나 아시아로 편입하려는 건 앞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이스라엘 케이스와 비슷하다. 과거 이스라엘은 아시아 축구의 강자로 군림했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분쟁을 이어가던 중동 국가들과 각종 국제대회에서 빈번히 마주치자 소속 대륙을 유럽으로 옮겼다. 홈&어웨이로 승부를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다.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 소속이던 호주가 AFC에 합류한 것 또한 참고할 만한 선례다. OFC에 월드컵 본선행 티켓이 0.5장 배정돼 좀처럼 본선 무대를 밟기 힘들자 호주는 지난 2006년 AFC 합류를 결정했다. 이후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쿼터를 활용해 꾸준히 본선 무대를 밟고 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러시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 또한 러시아축구협회의 결단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최근 OCA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IOC의 징계를 존중하되, 이 나라 선수들이 아시아 대회에 출전할 경우 최대한 출전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아시아 스포츠 무대에 합류하는 건 OCA와 AFC 입장에서 발언권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바 있는 러시아는 당장 아시아에 합류할 경우 최강자의 지위를 놓고 다툴만한 강호다. 한국도 러시아를 상대로 두 차례 싸워 1무1패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 했다. FIFA랭킹은 37위로 일본(20위), 이란(24위), 한국(25위), 호주(27위) 보다 낮지만, 그간 전쟁 여파로 A매치에 참여하지 못한 게 순위 하락의 핵심 요인이다.
월드컵 본선행 경쟁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2024년 북중미 3국(캐나다·미국·멕시코) 공공개최로 치를 월드컵의 경우 본선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증가하며 각 대륙별 쿼터도 함께 늘었기 때문이다. 기존 4.5장이던 아시아 몫 본선 티켓이 8.5장으로 확대된다. 아시아 3위권에서 꾸준히 경쟁하는 한국에겐 러시아가 가세한다해도 본선행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등 대륙 내 메이저급 대회에선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2024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차기 아시안컵에서 1960년 이후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에게 러시아는 껄끄러운 걸림돌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는 FIFA의 반응이다. 러시아가 31일 UEFA를 떠나 AFC에 가입하겠다고 결정을 내려도 FIFA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멈추지 않은 상황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게 FIFA 입장에선 징계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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