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분야 석·박사 1303명 증원, 80%가 수도권…“지방대 고사” 반발
“지방대를 살린다는 정부가 오히려 지방대 숨통을 조이고 있어요.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내년부터 첨단 신기술 분야 대학원 정원을 1303명 늘린다는 교육부 발표에 경남의 한 공과대학 교수 A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늘어나는 대학원 정원의 약 80%(1037명)가 수도권 대학 몫이기 때문이다. A교수는 “지방대는 학부도 어렵지만, 대학원생 정원 채우기는 거의 ‘포기 상태’일 정도로 어렵다”며 “그런데 학생들이 선호하는 첨단분야 대학까지 수도권에 몰리면, 어떤 유인책을 쓰더라도 지방대로 올 학생을 이제 정말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성균관대 251명, 시립대 161명 대학원생 증원
이날 발표에 따르면 반도체 621명, SW통신 341명, 빅데이터 100명 등 총 24개 대학에서 13개 첨단분야 석·박사 정원이 1303명 늘었다. 성균관대가 251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시립대(161명)·가천대(130명) 순으로 대학원생 정원이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이 1037명(79.6%)이고, 비수도권이 266명이다. 특히 서울에 61.7%가 집중됐다.
대학원생 증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결과가 나오자 지방대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난 8월 첨단분야 증원 계획이 발표됐을 때도 비수도권 7개 권역 총장협의회 이우종(청운대 총장) 회장은 “교육부와 대학이 강력히 추진해오고 있는 대학정원 감축 정책에 역행할 뿐 아니라,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인 계획”이라며 “지방대 살리기와 질 높은 인력 양성에 대한 고민 없이 증원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인력 양성을 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교수도, 기자재도 없는데 학생 어떻게 늘리나”
지역 대학에서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사립대의 반도체 전공 B교수는 “가르칠 교수를 모시기도 어렵고, 실험·실습 기자재를 살 돈도 부족한데 어떻게 증원 신청을 하겠나”며 “연구·교육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학생 수를 늘린다는 건 지역의 우수 인재에게 수도권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일”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석·박사에 이어 내년 초에는 학부 과정 증원 심사 결과도 발표한다. 지방에서는 대학원 뿐 아니라 학부도 수도권 정원만 늘려주는 효과가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B교수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첨단분야까지 수도권이 더 많은 학생을 데려간다면, 지방대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서서히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대를 살리겠다던 정부가 맞나 싶다”고 했다.
“지방대 살리려 첨단학과 증원 막아야하나”
학계에선 학생 정원 확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첨단분야 관련 학회 소속 C교수는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칠 공간도, 사용할 기자재도 그대로인데 학생 수만 늘어난다면 교육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반도체 분야 등에서 우수 인력이 더 많이 배출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원만 늘린다고 우수 인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지방대 스스로 더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수도권 대학의 첨단학과 증원을 막자는 것은 국가와 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획기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해 학생·기업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지방대들이 있듯이, 지방대 자체적으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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