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2' 추리보다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

이정희 2022. 12. 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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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이정희 기자]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포스터
ⓒ 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2019년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적인 저택을 배경으로 하여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룸으로써 '아가사 크리스티' 류의 고전적 추리극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 볼 만한 스릴러로 호평받은 바 있다. 3년 만에 속편인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아래 글래스 어니언)>이 돌아왔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부제처럼 앤티크한 전편과 대비되는 그리스 외딴 섬에 세워진 최첨단의 양파같은 글래스 어니언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살인 사건이 고품격(?) 추리물의 세계로 초대한다. 물론 전편에서 활약한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은 건재하다. 

시즌 1에서 부유한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란 트롬비는 그의 생일 다음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살로 마무리될 뻔한 사건은 '익명의 의뢰'를 받은 탐정 브누아 블랑의 등장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시즌 1의 <나이브스 아웃>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그대로 등장시켰다면, 속편 <글래스 어니언>은 갖가지 퍼즐이 기가 막히게 설계된 초대장을 받아 든 사람들이라는 보다 기발한 도입부를 통해 색다른 스릴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도록 만든다. 

억만장자 친구의 초대를 받고 달려온 사람들 

코네티컷 주지사 클레어(캐서린 한 분), 최첨단의 과학자 라이오넬(레슬리 오덤 주니어 분), 패션니스타이자 디자이너인 버디 제이(케이트 허드슨 분), 그녀의 조수 페그(제시카 헨윅 분), 인플루언서 듀크(데이브 바티스타 분)와 그의 여자친구 위스키(매들린 클라인 분) 그 면면만으로도 화려한 이들이 NFT(non-fungible token)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친구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 분)의 초대로 그리스 외딴 섬 글래스 어니언으로 향한다. 

8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이들의 우정 여행, 다들 현업이 바쁜 이들인데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올 만큼 그 우정이 대단한 것인가. 그런데 여행지에 도착한 이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게다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한다. 한때는 이들의 친구였지만 마일스와의 재판에서 모든 걸 빼앗긴 앤디(자넬 모네 분)이다. 재판을 벌인 건 마일스였는데 어쩐지 다른 친구들과도 말 한마디 없이 냉랭하다. 거기에 보내지도 않았다는데 그 기괴한 초대장을 받은 탐정 브누아 블랑도 등장한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파문을 시작하고 싶다면 작은 일에서 시작해서 평범함, 아이디어, 관습, 사업 모델을 깨뜨려야 하고 뭐가 됐건 사람들이 질린 것을 선택해요. 모두가 깨뜨리고 싶은 걸 대신 깨뜨려주는 거죠. 

우정 어린 모임이라는데 살어름판을 걷는 듯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 우리가 '붕괴자들(non-fungible token)'이라며 자화자찬하는 마일스에 다들 떨떠름하다. 거기에 다짜고짜 친구들을 초대해놓고 이 밤에 '살인 게임'을 벌이자는데. 농담이 진담이 되듯 게임이 진짜 살인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시즌 1에서는 제이미 리 커티스, 마이클 새넌, 크리스토퍼 플러머, 돈 존슨, 크리스 에반스 등이 출연했다. 과연 이들 중 누가 범인일까? 시즌 1을 본 사람들은 탐정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우스개를 회자시켰다. 그렇다면 그런 '전통'(?)은 시즌 2에서도 이어질까? 

영화는 살인 게임이 살인이 될 뻔한 추리물의 예정된 구도를 탐정 브누아 블랑의 활약? 아니 그 판을 기획한 마일스 브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는 설정을 통해 한번 비튼다. 그런데 게임이 엎어졌으니 이 밤을 어떻게 보내냐는 마일스의 하소연이 무색하게 적절하게 살인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글래스 어니언에 모인 이들의 진실이 한 겹씩 벗겨진다. 

추리물로써 시즌 1과 시즌 2에 대한 호불호는 갈린다. 시즌 1이 아가사 크리스티 분위기에 충실한 부호와 그 가족간의 재산을 둘러싼 고전적인 갈등을 사건화시켰다는데 강점이 있다면, 시즌 2는 오늘날 미국 사회의 현실을 작정하고 풍자해내려 했다는 데 관전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건과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점을 따라가다보면 두 번의 반전과 알고보니 그랬어라는 브누아 블랑의 설명으로 끝나는 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마일스와 친구들의 관계에 주목한다면 속물 군상들의 미국 사회를 양파처럼 한 겹씩 벗겨나갈 수 있을 듯하다. 

미국 사회 꼬집는 인물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 그리스 섬에 도착한 이들은 마일스가 뿌려주는 약물 하나만으로 마스크에서 해제된다. 거기에 마일스, 그가 만든 '글래스 어니언'은 그 기술력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결집체이다. 그리고 화장실의 마티스로부터 시작해서 건물 곳곳에 세계 명화가 걸려있고, 그 정점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첨단 경비 시스템으로 보호되는 모나리자.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루브르 박물관에 돈을 좀 주고 빌려왔다며, "모나리자와 한 호흡에 같이 언급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마일스가 말한다.  

그렇게 맘만 먹으면 모나리자도 사올 수 있는 억만장자, 그런데 그가 우정이라며 초대한 친구들, 그들의 얼굴이 복잡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모두 이른바 '마일스의 황금 젖꼭지'에 매달린 처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엄마로 정치에 나선 신선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클레어, 하지만 클레어는 마일스의 정치자금이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가 자신을 흑인해방운동가에 빗대어 매장될 뻔한 위기에 빠진 버디에게 돈을 대서 '스위티 팬츠'를 만들어 대박나게 만든 이도, 트위치에서 십대들에게 발기부전제나 팔다 쫓겨날 처지의 듀크를 당대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도록 경제적으로 도운 이도, 라이오넬의 과학적 결과물이 돈이 되도록 만든 이도 모두 마일스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일스의 말 한 마디에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 '황금' 때문에 마일스를 오늘에 이르게 한, 그리고 그들에게 마일스를 소개시켜 준 진짜 우정의 장본인을 배신하기까지 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원죄의 카르텔'이기도 하다. 

공범의 카르텔이자, 공동의 하수인인 모두는 또 저마다 마일스를 죽일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마일스의 돈으로 만든 버디의 '스위티 팬츠'는 방글라데시의 비인간적 공장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마일스는 그걸 버디가 책임지라 하고 있었다. 듀크의 애인 위스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마일스를 유혹한다. 더구나 마일스는 더는 듀크를 후원하지 않겠단다. 라이오넬이 개발한 새로운 연료 '클리어'는 그게 가정집 연료가 될 경우 전 미국이 불바다가 될 처지인데, 그걸로 발전소를 세우라 주지사 클레어를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말이 우정 여행이지, 저마다의 위기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그렇게 '황금 젖꼭지'를 가진 마일스, 영화 속 가장 절정의 순간은 살인범이 밝혀지는 순간보다, 그런 최고의 억만장자, 최고의 시스템을 가진 글래스 어니언을 고안해낸 마일스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영화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냅킨에 그렸던 다이어그램을 본딴 듯한 범죄의 증거가 등장한다. 마일스의 의상이나, 등장하는 '현실 왜곡장' 운운은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킨다. 거기에 일론 머스크의 로켓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온갖 미국의 신흥 갑부들을 캐릭터로 구축한 마일스, 그런 그가 알고보니 동료의 아이디어를 강탈하는 협잡꾼에, 단어 하나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말이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도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떠들어 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탐정 브누아 블랑은 조력자 여성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후, 진실이 밝혀지고, 유리로 만들어진 사상누각은 말 그대로 와장창 무너져간다. 영화는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오늘날 미국의 부가 바로 이 '글래스 어니언'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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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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