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비위만 맞추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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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다.
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걸핏하면 학교를 빠지고 조퇴를 한다.
T는 평소 친구들의 의견만 따르고 좀처럼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T에게는 남의 평가보다 자신의 감정이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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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다. 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걸핏하면 학교를 빠지고 조퇴를 한다. T는 평소 친구들의 의견만 따르고 좀처럼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느냐,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이렇게 눈치만 보고 친구들 비위만 맞추다 보니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 학교가 즐겁지 않았다.
T에게는 남의 평가보다 자신의 감정이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강아지를 키우며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T에게 ‘어미 개의 비유’를 들려줬다.
어미 개에게 여러 마리의 새끼가 있으면 말 잘 듣고 순한 녀석도 있지만, 말썽꾸러기 녀석도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말썽꾸러기 녀석이 어미를 잃고 헤매다가 뒤늦게 돌아왔다. 이때 어미 개는 어떤 행동을 할까. 당연히 새끼를 보듬고 핥아주며 위로해 줄 거다. 우리의 감정도 새끼강아지들과 같아서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말썽꾸러기 녀석처럼 부정적인 감정, 예컨대 화, 억울함, 미움, 질투 등도 있게 마련이다. 말썽꾸러기 녀석을 어미가 다루듯이 이런 부정적인 감정도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보듬어 주고 핥아줘야 한다. 그 감정을 그냥 방치한다면 언젠가 못 견디고 폭발할 수도 있다.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가장 시급하지만 쉽게 익히기 어려운 중요한 기술이다. 습득하는 데 시간도 걸리니 시행착오를 겪으며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어려서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울 때를 기억해 보자. 페달을 밟으며 균형을 잡고 핸들이 흔들리지 않게 똑바로 쥐고 정면을 바라보기를 동시에 하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습득만 하면 언제든 자전거를 멋지게 탈 수 있지 않은가.
의사 표현 연습은 크게 2단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세 개의 문장을 기억해야 한다. ①네가 ‘무엇무엇’을 해서, 또는 했을 때(자신의 감정을 건드린 상대방의 행동) ②난 ‘무엇무엇’을 했어(자신의 기분을 표현) ③왜냐하면 ‘무엇무엇’(상대의 행동이 감정을 자극한 이유) 등이다. 예를 들면 “네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을 때 좀 화가 났어. 나와의 약속이 너한테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거든” “엄마가 학원 그만두라고 말했을 때 전 많이 서운하고 불안했어요, 엄마가 저를 포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되도록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간략하지만 명확히 말하되,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게 좋다. 공격을 받으면 누구든 반격을 준비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 소통을 할 수 없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조심했음에도 상대가 공격적인 태도로 나올 때 대응하는 방법으로 ‘굴절 기법’이라고 한다. 말을 통한 상대의 공격, 비난, 무시를 비켜 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상대가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혹은 “왜 바보같이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할 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신 다음과 같은 말로 상대의 비난을 피한다. 상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럴지도 모르지”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았어”라고 말한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 “하지만 내 감정은 그래.” 반복되는 논쟁을 피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원치 않는 것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고 상대도 무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할 수 있다. 물론 자전거를 배우듯이 반복연습은 필수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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