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저 곽윤기로 시작해서 조규성으로 끝났다고 하던데요?”

고봉준 2022. 12. 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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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트트랙의 톡톡 튀는 간판이자 든든한 맏형인 곽윤기를 28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곽윤기. 전민규 기자

“2022년이요? 제 평생의 안주거리죠!”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되돌아 봐달라고 하자 곽윤기(33·고양시청)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로서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2022년을 이대로 보내기는 싫은 눈치. 길거리 곳곳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28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핑크 보이’ 곽윤기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곽윤기는 한국 쇼트트랙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맏형이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로 화려하게 등장한 뒤 2018 평창 대회와 올해 베이징 대회를 차례로 뛰며 팬들로부터 많은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대는 역시 2월 열린 베이징올림픽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스케이트를 탔던 이상화(34)와 진선유(34), 이정수(33) 등 또래 선수들이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베이징으로 향한 반면, 곽윤기는 현역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을 이끌며 빙판을 누볐다.

곽윤기가 올해 2월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콘으로 떠오른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던, 33살의 나이로 임한 3번째 올림픽. 걱정은 컸지만, 이를 비웃듯 열매는 값졌다. 곽윤기는 남자 5000m 계주 결선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와 주특기인 인코스 돌파 기술을 선보이며 은빛 질주를 펼쳤다. 취재석 이곳저곳에서 “역시 곽윤기다”라는 탄성이 나왔던 순간.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당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곽윤기는 “솔직히 말하면, 경기 중반까지 금메달은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대 경쟁 상대였던 러시아 선수들이 한참 뒤로 밀렸고, 중국 선수가 11바퀴를 남기고 넘어졌다. 캐나다만 잡으면 우승이 가능하다고 봤다”면서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날이 흔들리더라. 아, 김칫국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당시 마음은 방심이 아니라 확신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번 되돌아가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맏형의 리더십은 빙판 바깥에서도 빛났다. 당시 최대 이슈였던 개최국 중국의 판정 논란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소신 발언으로 박수를 받았다.

곽윤기는 “내 인터뷰가 그렇게 공격적인 코멘트인지도 몰랐다.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한 것뿐이다. 국민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운동한다는 놈이 핑계를 댄다는 시선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당시 대회는 너무하긴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곽윤기(오른쪽 2번째)가 올해 9월 인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홈런더비 X에서 LA 다저스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만능 엔터테이너’ 곽윤기
언젠가부터 곽윤기란 이름에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게 됐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100만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가 됐고,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핫한 아이콘이 됐다.

또, 7~10월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초청을 받아 전 세계 셀러브리티들과 함께 ‘홈런더비 X(홈런과 수비 등으로 승부를 겨루는 이벤트 경기)’에도 출전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이처럼 화려한 2022년을 보낸 곽윤기는 “정말 감사할 뿐이다. 많은 대회를 치르는 동안 이렇게 인기가 올라간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쇼트트랙 그리고 빙상 전체가 사랑받는 느낌이라 더욱 뿌듯하다. 실제로 요즘 경기장에선 많은 팬들이 어린 선수의 이름까지 외치며 응원해주시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2022년은 나 곽윤기로 시작해서 축구 국가대표 조규성 선수로 끝났다는 말이 있더라. 기분이 좋기는 한데 마무리를 빼앗긴 느낌이 든다”는 농담에선 특유의 장난기가 함께 느껴졌다.

한국 쇼트트랙의 톡톡 튀는 간판이자 든든한 맏형인 곽윤기를 28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곽윤기. 전민규 기자

◆태극마크 그리고 핑크빛 헤어스타일
곽윤기는 현재 태극마크를 잠시 내려놓은 상태다. 올해 5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을 완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00m 준준결선 도중 왼쪽 허벅지를 다쳤고,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남은 경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국가대표 복귀 의지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곽윤기는 오히려 “태극마크가 더 그리워졌다. 사실 국가대표로 뛸 때는 태극마크가 없는 선수들이 종종 부럽기도 했는데 막상 이를 달지 못하게 되니 태극마크의 소중함이 더욱 커졌다”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생애 4번째 올림픽을 향한 꿈도 가슴속 깊이 품고 있다. 2026년 열릴 밀라노-코르티나 대회. 곽윤기는 “내가 다음 올림픽을 뛰게 된다면,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령 국가대표가 된다고 알고 있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도전하는 과정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윤기(가운데)가 올해 2월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위해선 2023년 새해를 부상 없이 보내야 하는 곽윤기다. 내년 2월 전국동계체전과 4~5월 예정된 국가대표 선발전이 30대 중반이 될 베테랑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 말미, 곽윤기에게 새해에는 핑크색 헤어스타일을 바꿀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핑크색을 바꾸라는 말은 내게 인코스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인코스를 그만 파고들고 싶을 때 바꾸겠다”고 잘라 답했다. 아무래도 ‘선수’ 곽윤기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핑크빛 머리카락이 계속해 찰랑일 것만 같다.

곽윤기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남긴 새해 인사.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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