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거대한 역전 중... 한국의 모호한 줄타기, 우려된다 [소셜 코리아]

하준경 2022. 12. 29. 12: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정부는 돈 풀고 중앙은행은 금리 올리는 추세... 이념보다 실용 추구해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하준경]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 연합뉴스
제로 근처에 머물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1년도 안 돼 4.5%가 됐다. 시장에선 고금리 기조가 쉽게 꺾이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거시경제 환경, 특히 글로벌 정책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현재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주요국의 거시정책 기조 전환 흐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월 8일 기사에서 선진국들 사이에 '거대한 정책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를 지배했던 '빡빡한 재정정책과 느슨한 통화정책의 조합'이 지금은 거꾸로 '느슨한 재정정책과 빡빡한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돈을 쓰되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미국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고압경제' 전략이 있다. 고압경제란 상당 기간 강한 초과수요를 발생시켜 타이트한 노동시장을 유도하되, 일정 정도의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명목금리 상승은 용인하는 정책기조다.

옐런이 재무장관으로 부임한 후 추진한 대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의 대규모 재정자금을 미국인들 손에 직접 쥐여줌으로써 확실히 수요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즐겨 활용됐던 '민간화된 케인스주의', 즉 민간에게 쉽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경기를 띄우는 정책기조로부터의 이탈 또는 전환을 의미한다.

정부 재정보다는 대출과 금융에 의존했던 과거의 정책기조는 주택을 비롯한 여러 자산들이 금융상품처럼 거래되는 '금융화' 흐름과 맞물려 자산거품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부채주도성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방식은 정부 입장에선 의회를 거치지 않고 비교적 손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자산시장 활성화는 조세수입을 쉽게 늘리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고압경제 혹은 오리지널 케인스주의

그러나 금융화에 기댄 부채주도성장은 기대했던 낙수효과보다는 불평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노동소득보다 자산소득이 더 빠르게 늘었고, 지대 추구 행위가 확산됐다.

특히 자산이 없는 젊은이들은 자산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부채 부담을 떠안거나 가정 형성과 출산을 미뤄야 했다. 미국의 출산율이 2020년 1.64까지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영국의 신농노계급, 월세세대, 한국의 N포세대 등의 신조어들이 이런 문제들을 잘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부채주도 경제 운용은 한계에 달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1920년대 이후 최고조에 달한 불평등도, 저소득층의 소득 정체는 서민들에게 더 이상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2019년부터 올리비에 블랑샤르, 래리 서머스 등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 상황을 반영한다.
     
'쉬운 돈' 때문에 자산거품과 금융 불안정성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지적하듯 대규모 자금을 빌릴 수 있는 기득권 기업들은 진입장벽을 더 쉽게 칠 수 있게 되고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등 의도와 정반대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그래서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이런 한계에 대한 돌파구가 재정확대를 중심으로 한 고압경제 전략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나 옐런 재무장관이 신자유주의적 낙수효과를 강하게 불신하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와 부채주도성장을 넘어서 재정 중심의 오리지널 케인스주의가 힘을 얻게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재정 중시 흐름은 2020년 이후 코로나19에 따른 재정확대, 미중 갈등 및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세계화의 후퇴,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대응 등 산업정책의 부활과 맞물려 더 강화되게 됐다.

재정이 일으키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수요확대 효과가 세계화의 후퇴 및 공급망 재편과 결합하면 수요와 비용 양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이자율 상승은 수급 불균형으로 압력밥솥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김을 빼주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인플레이션은 통제되기만 한다면 과거 누적된 부채의 가치를 낮춰준다. 장기저리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렸던 주요국 정부들의 입장에선 앉아서 실질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당면 과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금리인상으로 달러가치를 높이면서 다른 나라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자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자 한다. 또 세계 경기를 일정 정도 둔화시켜서라도 에너지 수요를 줄임으로써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여러 나라들이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속화를 막기 위해 이른바 '역환율 전쟁'을 벌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금리를 올리고 세금을 더 걷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을 활용해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가져온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기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주요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이례적 수준의 재정확대는 정상화하되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는 재정지출을 높게 유지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은 8070억 유로(약 1088조 원)의 '차세대 펀드'를 지역 내 연대성 강화에 쓰려 하고 있고, 독일은 가스 수입업체를 국유화하면서 에너지 보조금을 포함한 경제방어막을 국내총생산(GDP)의 5.2% 수준으로 구축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우회한다. 프랑스는 프랑스전력공사(EDF)를 국유화하고, 일본은 가구당 평균 4만 5천 엔(약 43만 원)의 에너지 보조를 포함한 71.6조 엔(약 688.3조 원) 규모의 종합경제대책을 추진한다.

이 와중에 영국에선 리즈 트러스 총리가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 부활을 야심차게 추진하다 시장의 거센 반발을 못 이기고 사퇴한 바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라는 1980년대식 정책기조를 재현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례적으로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실수'라고 비판할 정도로 글로벌 역풍이 일었다. 다른 나라들이 증세를 추진할 때 감세로 기업을 유치하자는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구상은 글로벌 왕따를 초래했고, 감세로 기업이 성장하면 세수가 확대돼 재정이 건전해진다는 논리는 시장의 불신을 야기했으며, 부자감세가 낙수효과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여론의 냉대를 받게 됐다.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사태의 진정한 문제는 전시에 버금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통합과 사회연대, 고통분담보다는 부자감세와 같은 이념적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점이다. 트러스의 후임인 리시 수낵 총리는 같은 보수당 소속임에도 이전의 증세 계획, 즉 법인세 25% 인상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줄타기 계속할 수 있을까
     
 24일 새벽 0시 55분께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능동적이고 실용적으로 대응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의 거시경제정책은 줄타기와 같다. 재정정책은 감세를 추구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동시에 취약계층도 지원한다고 한다. 통화정책은 한미 간 금리역전이 일어나고부터는 물가안정, 금융안정, 환율안정, 경기조절 등 여러 과제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한국의 2023년도 정부예산을 보면 이 줄타기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감세와 긴축재정 기조가 고통분담, 사회연대라는 위기 극복의 토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여파는 내년에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고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지난 가을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발생했던 것과 같은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수익성 문제가 악화돼 신용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지난번 유동성 위기는 당국의 대응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은 더 높아진 상태다.

앞으로는 유동성 문제뿐 아니라 구조조정 압력이 커질 것이다. 긴축재정을 추구하는 정부가 제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부채조정, 취약계층 지원, 에너지 문제 해결 등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까. 문제를 덮고 가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다른 나라들은 에너지 위기를 맞아 전기·가스 요금을 대폭 올렸으나 한국은 물가안정을 위해 인상 요인을 한전이 적자로 흡수하고 있다. 적자보전을 위한 한전의 대규모 채권발행은 금융시장에 부담을 준다. 에너지 사용이 줄지 않으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지속되고 있고, 그것이 달러 흐름을 압박하면서 환율과 금리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대외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의 역할 없이 이 상황을 빠져나오긴 어렵다.

세계 주요 국가는 에너지 가격을 올리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려 노력하면서도 재정을 통해 어려워진 경제 주체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유럽은 이를 위해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증세를 추진한다. 금리를 올리면서도 공급 측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적극재정이 인플레이션에 부담이 된다면 긴축재정보다는 증세를 택한다는 자세다.

이런 기조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잘 나타나 있다. 법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이지만 실제 내용은 긴축과는 거리가 멀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분야 투자 등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해 공급 측 애로 요인들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하한선 적용이나 부자증세 같은 세수 증대 정책도 적극 재정 패키지에 들어있다.

옐런 미 재무장관은 연초에 이미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브랜드는 '현대식 공급 측 경제학'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재정확대로 고압경제를 만들어 노동시장을 달구고, 인플레이션과 명목금리 상승은 용인하되, 공급 측 애로 요인이 문제가 되니 정부가 이를 적극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1980년대의 '구식 공급 측 경제학', 즉 감세와 규제완화, 작은 정부를 통해 민간의 공급능력을 확충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한국도 철지난 '구식'보다는 '현대식'을 추구해야 한다.

취약계층, 고금리로 내몰릴 우려

변화된 환경은 개별 경제 주체들에게도 변화를 가져다준다. 현재 미국의 명목 정책금리는 4.5%로 급상승했지만 인플레이션은 7%대 수준이다. 실질금리는 아직 낮다는 이야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비슷하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서 명목금리가 높아지되 실질금리는 아직 높지 않다. 이런 상황은 사실 채무자 입장에서 보면 빌린 원금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면서 원금 가치 하락분을 보전해주기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이자로 지불하는 셈이 된다. 이는 사실상 빚을 갚는 속도를 높이는 것과 같다.

고금리의 문제는 현재까지는 부채축소, 즉 빌린 돈으로 투자하는 '레버리지'를 줄여나가는 '디레버리징'으로 인해 생겨난 부담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자만 조금씩 내다가 원금에 해당하는 부분을 더 많이 갚게 되면 현금흐름에 부담이 커지고 흑자를 내는 경제 주체라 할지라도 유동성 면에서 곤란을 겪게 된다.

흑자도산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취약한 경제 주체들은 금융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과도한 고금리로 내몰리기 쉽다. 취약계층은 금리 4% 정도로 빚을 내다가 갑자기 15%, 20% 수준의 고금리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부채 축소 또는 조정 과정의 유동성 문제는 재정, 정책금융, 신용정책 등 다양한 수단으로 대응할 수 있다. 취약계층에 대해선 재정과 서민금융으로 대응하고, 괜찮은 담보에 대해선 다소 높아진 금리라 할지라도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해준다는 19세기 이래의 고전적 원칙, 즉 배젓의 원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부채 조정은 필요하지만 유동성 자체가 메말라 약자들이 초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위기가 다른 부문으로 전이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시장의 근본인 신뢰를 더욱 다져야 할 때다. 이념을 뛰어넘는 실용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하준경 /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하준경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하준경 교수는 한양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했고,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자문위원,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거시경제, 경제성장, 화폐금융, 인구구조 등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