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얼굴 없는 기부천사

고형광 2022. 12. 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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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때,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서 보기드문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기부금도 되찾아 천사의 뜻의 따라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됐다.

이틀 전 오전 노송동 주민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연탄은행에 기부된 연탄은 올해 25만700장으로, 전년과 비교해 절반이나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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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자들이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3년 전 이맘때,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서 보기드문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기부금을 노린 범행이었다. 이른바 ‘얼굴 없는 천사’가 2지난 20년간 매년 연말 적지 않은 현금을 노송동 주민센터 근처에 놓고 간다는 것을 알고 이 돈을 노린 것이다. 범인들은 그때를 기다려 현금 약 6000만원이 든 상자를 훔쳐 달아났다. 차량 번호를 가린 채 오랜 시간 서성이는 이들을 수상히 여겨 범인의 차량번호를 적어 둔 한 시민의 신고로 다행히 범행 4시간여 만에 검거됐다. 기부금도 되찾아 천사의 뜻의 따라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됐다. 초유의 사건이 터지면서 온정의 손길이 자칫 중단될까 모두가 노심초사했지만 천사는 굴하지 않았다. 이듬해는 물론 올해도 어김없이 그는 찾아왔다.

이틀 전 오전 노송동 주민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인근 교회 어린이집 차량 아래에 상자를 뒀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짤막한 말만 남겼다. 그가 놓고 간 상자 안에는 여느때와 비슷하게 5만원권 다발 여러 개와 돼지저금통,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들과 소년소녀 가장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적혀 있었다. 현금은 총 7600여만원. 돼지저금통엔 10원,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수북했다. 일년 내내 아끼고 아껴 모았음을 알려주는 흔적이라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의 선행은 2000년부터 올해까지 2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이렇게 놓고 간 금액은 무려 8억8400여만원에 이른다.

세밑 한파가 밀려들면서 올해도 길거리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온정의 손길은 예전만 못하는듯 하다. 치솟는 물가에 경기 침체까지 겹쳐 기부 심리마저 위축된 탓이 크다. ‘사랑의 온도탑’ 수치가 이 같은 현실을 대변한다. 올해 목표액은 작년(3700억원)보다 9.2% 높은 4040억원인데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온도탑 수은주는 전날 기준 70도를 겨우 넘겼다. 지난해 같은 때보다 8도가량 낮다. 이마저도 개인들의 기부는 줄어 기업들의 후원으로 수은주를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연탄은행에 기부된 연탄은 올해 25만700장으로, 전년과 비교해 절반이나 급감했다. 무료급식소도 후원금 급감으로 휘청인다는 소식이 즐비하다. 하루 수백명이 찾는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는 건물 증축 위법성 문제로 철거 위기에까지 놓였다. 찾아왔던 취약계층 어르신들이 허기를 안고 발길을 돌리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그 어느때보다 힘겨운 겨울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웃을 돕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행이 더욱 따뜻하고 훈훈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부에는 단서와 조건이 붙지 않는다. 진정한 '나눔'의 마음이 없으면 할 수도 없다. 남을 도왔다는 보람은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선이라는 덕성은 이중으로 축복받는 것이요,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미덕 중 최고의 미덕"이라 칭송했다. 기부는 절망의 벼랑에 선 어려운 이웃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희망의 씨앗이요, 인정은 베풀수록 깊어지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 계절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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