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남 씨와 아이비와 백혈병환우회 그리고 나비효과  

이영수 2022. 12. 2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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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덕거린 것이 대기에 영향을 끼쳐 나중에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된다는 기상학 용어다. 어떤 사람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때 자주 인용되는 단어다. ‘나비효과’를 시청각적으로 보여준 백혈병 환자 한 명이 있었다.

나비효과①: 양용남 백혈병 환자가 가수 아이비 팬사인회를 찾았다.

나는 2005년 11월 2일부터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환자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가끔 사무실에 놀러 오는 백혈병 환자 중 양용남 씨가 있었다. 용남 씨는 백혈병 치료가 끝나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였다. 성격도 긍정적이고 표정도 밝고, 체격도 건장해 만날 때마다 늘 기분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려면 환자나 환자가족이 직접 혈소판 헌혈자를 구하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던 백혈병환우회 사무실에 용남 씨도 종종 나와 봉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혈병이 재발해 2007년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7년 5월 25일 아침으로 기억한다. 평상시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습관처럼 네이버에 ‘백혈병’ 단어로 검색을 했다. 그러자 용남 씨가 당시 ‘유혹의 소나타’로 유명한 가수 아이비 팬사인회를 찾아간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 나온 모자와 마스크를 쓴 사진은 한눈에 봐도 용남 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용남 씨는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팬사인회에 찾아갈 그런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다. 기사를 보면서 “용남 씨가 연예인 팬사인회에 무슨 이유로 갔을까?”하고 한참을 생각했었다.

출처: 스타뉴스

그때 문득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용남 씨처럼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인도계 미국인 ‘Jaz'라는 환자가 있었다. “아이비를 만나는 것이 남은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는 그의 말을 아이비가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아이비가 미국 공연 때 실제 그를 만나서 응원했고, 그러한 내용의 기사가 5월 20일 보도되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상황의 용남 씨가 본인처럼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백혈병 환자를 응원하는 아이비 모습에 크게 감동한 것 같았다. 본인도 죽기 전에 아이비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출처: 스타뉴스

팬사인회 방문이 인연이 되어 용남 씨와 그의 아내는 아이비 공연에도 초대되기도 했다. 2007년 7월 4일 용남 씨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아이비가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했다는 기사도 보도되었다. 본인 팬클럽의 중요한 멤버도 아니고, 팬사인회에 한 번 참석하고 공연에 한 번 초대된 정도의 인연에 불과한데, 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까지 찾아간 아이비에 나도 감동했다. 용남 씨가 아이비를 만나고 하늘나라로 떠나기까지 한 달 반 동안 가장 힘든 시기였을 텐데, 그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준 아이비가 고마웠다. 그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이비와 함께 백혈병 환자를 돕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비효과②: 양용남 백혈병 환자가 아이비와 백혈병환우회를 만나게 했다.

용남 씨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4년이 지났을 때쯤인 2011년 11월 1일이었다. 당시 네이버 파워블로거였던 아이비가 본인의 블로그에 헌혈버스에서 생애 첫헌혈을 한 소회의 글을 올렸다. 당시 백혈병환우회는 헌혈운동을 활발히 할 때였다. 용남 씨 추억으로 언젠가는 백혈병 환자 돕기를 함께 하자고 아이비에게 제안하고 싶었는데, 그때가 ‘적기’(適期)라고 생각되었다. 

출처: 아이비 네이버 블로그

아이비에게 블로그 쪽지로 백혈병환우회를 소개하고, 백혈병환우회와 용남 씨와의 인연, 용남 씨와 아이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활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을 보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이비에게서 답장이 왔고, “본인이 필요할 때 불러주면 언제든지 가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렇게 아이비와 백혈병환우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비는 헌혈에듀케이션, 헌혈톡톡콘서트, 헌혈데이, 클린시네마, 조혈모세포기증 희망등록 등 백혈병 환자를 돕는 백혈병환우회의 요청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백혈병환우회에서 현재까지는 개인으로는 기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고, 2012년 6월 17일부터는 백혈병환우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출처: 한국백혈병환우회

나비효과③: 아이비가 백혈병환우회와 함께 백혈병 환자를 돕고 있다.

백혈병환우회에서 아이비에게 제안해 함께 진행했던 활동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아이비는 헌혈 경험이 있어서 초등학교 일일교사가 되어 미래의 예비 헌혈자인 학생 대상으로 헌혈교육을 하는 ‘헌혈에듀케이션’을 제안했다. 교육할 내용을 만들고, 연습하는 준비 과정을 거쳐 2011년 12월 20일 서울에 있는 인왕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 대상으로 “병 들고 다친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혈액을 기부하는 것이 헌혈”이라는 순수헌혈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하는 ’헌혈에듀케이션‘을 진행했다.

출처: 한국백혈병환우회

둘째, 백혈병환우회는 수혈받은 백혈병 환자들이 헌혈해 준 헌혈자를 초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계속해 헌혈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헌혈톡톡콘서트’를 2010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인 아이비는 2011년부터 헌혈톡톡콘서트에 출연해 노래 공연으로 헌혈자를 격려하고 있다. 
출처: 한국백혈병환우회

셋째, 아이비는 백혈병환우회 홍보대사가 된 후 2013년 5월 2일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을 방문해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이식을 받으면 완치가 가능한데도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적어서 생명을 잃는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이 많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조혈모세포이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기증거부율이 50%나 되는 상황도 알게 되었다. 아이비는 본인이 실제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게 되면 기증 사실을 미담으로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다큐3일’과 같은 방송에 출연해서라도 본인의 경험을 알려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활동에도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출처: 한국백혈병환우회

넷째, 백혈병환우회는 홍보대사에게 재정 후원 요청을 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재능과 시간 기부 그 자체가 재정 후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비는 기부도 자주 한다. 아이비는 기부를 순식간에 그리고 단순하게 한다. “적금 든 게 이번에 하나 만기가 되는데 단체 후원계좌로 보내 놓을게요. 도움이 필요한 백혈병 환자에게 주세요.” 이런 식이다. 누구에게 지원할 건지, 어떻게 사용했는지, 묻지도 않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백혈병환우회를 믿고 그냥 기부한다. 아이비의 2천만 원 적금 기부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백혈병 환자 ‘주디스’의 생명을 2년 이상 연장하는 표적항암제 스프라이셀 약값으로 사용되었다. ‘주디스’는 한국에서 낳은 딸 ‘애미’와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출처: 한국백혈병환우회

2007년 5월 25일 양용남 백혈병 환자가 아이비의 팬사인회에 가지 않았다면 백혈병환우회와 아이비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백혈병환우회와 아이비가 함께 지난 11년 동안 백혈병 환자를 위해 했던 그 많은 흔적도 모두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양용남 백혈병 환자가 아이비의 팬사인회에 간 나비효과 덕분에 백혈병환우회와 아이비가 만났고, 함께 지난 11년 동안 백혈병 환자를 돕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에 있는 용남 씨는 이러한 나비효과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용남 씨가 아이비 팬사인회를 찾는 그 한 번의 날갯짓이 콩고에서 온 백혈병 환자 주디스의 생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투병 중인 많은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수혈이나 조혈모세포이식과 같은 투병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거나 끼칠 것이다.”라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용남 씨가 일으킨 나비효과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쓰며 당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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