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시니어 교육에서 대학의 미래 찾자

2022. 12. 2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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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는 계절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벚꽃 엔딩’은 최근 지역 대학의 위기를 나타내는 말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가 현실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장학금 혜택을 늘리는 등의 대책 마련 논의가 활발하지만, 수도권 선호 현상은 쉽사리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시대에 대학을 역할을 시니어 평생교육 기관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작년 코로나가 극심할 때 은퇴한 시니어가 있다. 잠깐은 편히 쉬는 듯하더니, 금세 활동량이 급격히 줄고 하루가 길다고 했다. 올해 초, ‘미래라이프융합학부’ 신입생이 된 필자의 70대 모친 이야기다. 이 교육과정은 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 중 하나이다. ‘지역의 건강한 100세 시대를 견인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개설되었다’고 홍보한다. 크게 지역 맞춤형 인재양성 교육과정과 성인 학습자 친화형 교육과정으로 나뉜다. 레저, 스포츠, 외국어, 문화예술 분야의 전공학습을 통해 취업과 전직을 하거나 자기계발과 건강증진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얼마 전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이한 소감을 들어보니, 활력이 넘친다. 4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면 바리스타가 될지, 할머니 운동코치가 될지 고민 중이다. 기말고사를 치르기 위해 매일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해부학 수업을 반복해서 듣는 걸 옆에서 보노라면, 어머니 연배의 치매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한국에서 노인교육은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1970년대의 유네스코 평생교육운동과 더불어 노인도 배워야 한다는 뜻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빠른 도입과는 달리 그간 현장에서의 시니어 교육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입장을 반영했고, 적극적인 정책이 부족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 ‘평생교육법’이 개정되었다. ‘모든 국민이 평생교육 참여 기회를 골고루 보장받을 수 있도록 평생교육 바우처의 발급대상을 현행 저소득층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고, (중략)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면서, 평생교육 통계조사를 위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 그 이유라서 큰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면, 먼저 독일에서는 1978년부터 의과대학에서 노인대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통일 이후 동·서독의 격차로 정부가 일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베를린에서는 수요자 중심으로 회원제 '프로 제니오레스'라는 자발적인 조직이 등장했다. 노인들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강의와 세미나를 500개 이상 운영하는데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용이 커피 한잔 값도 안된다. 또 지역 사회와 대학도 공동으로 시설을 제공하거나 기획에 참여하고 연구로 뒷받침하는 등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노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캐나다에는 '뉴호라이즌(New Horizon Program)'이 있다. 시니어에게 레크레이션, 취미활동, 역사, 문화 강좌를 제공하는 한편 지역 사회활동을 통해 시니어의 소외나 고독을 해소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도해서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 한인방송(CKBS)은 직접 알버타 주정부의 뉴호라이즌 펀드에 프로그램을 신청해 한인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영어나 요리, 댄스교실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점심 간식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데, 참여하는 시니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시니어 골프교실을 만들어 프로골퍼를 초청하는가 하면,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야외활동에 참여하고, 사전에 설계된 운동 프로그램을 통해 유연성과 근력을 향상시킨다.

미국은 ‘골든 ID프로그램(Older Adult/ Senior Citizen Free Tuition Program)’이 있다. 시니어의 기준은 60세 정도이고, 과정들은 모두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하다. 대부분의 주립대학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낮에는 젊은이들이, 밤에는 직장인이나 나이든 사람들이 다니는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학은 항상 학생들로 붐빈다. 미국에서 노년학을 전공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캠퍼스에서는 젊으면 학생, 중년이면 교수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노년학 대학원은 담당 교수가 30대, 학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인식 전환은 중요한 문제다. 노인의 날 세미나에서 성신여대 노경란 교육학과 교수는 노인 스스로 ‘내가 배워서 뭐해’라고 하거나 가족들도 ‘그거 배워서 뭐해’라는 반응을 보이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국은 교육이나 학습활동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시니어 교육이 전하는 가치와 행복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시니어들도 학습의 주체가 되어 성장할 수 있고,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사람으로 바라봐야 다른 관점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교육 차원에서 노년기는 쇠퇴의 시기가 아닌 계속적인 발전과 성장의 시기이며, 이러한 활동들은 세대간 교류를 늘려 더불어 사는 사회에 자연스레 기여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배우고 일하고 노는 것을 평생 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비중은 달라지더라도 이 세 가지는 돌고 돈다. 인생은 더 이상 전반전과 후반전이 아니다. 돌봄이 필요해지는 인생 4막은 차치하더라도 길어진 삶에 다양한 배움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나이듦을 위해, 인생 3막의 시기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대학의 의미와 쓰임새를 확대해보면 어떨까.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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