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안쏘고 韓 흔든 北…대박난 '회색지대 도발' 더 세진다
북한의 대남 도발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핵ㆍ미사일과 같은 고강도 도발에다 지난 26일과 같은 무인기 영공 침범 등 저강도 도발을 적절히 섞고 있다. 특히 무인기 영공 침범은 전형적인 ‘회색지대 전략’의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내년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이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색지대(gray zone)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은 모호한 영역이다. 회색지대에서 실제 무력 분쟁이나 전쟁으로 확대하지 않도록 의도를 감추면서도 점진적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이루는 게 회색지대 전략이다.
러시아가 2014년 돈바스 지역에서 정규군을 민병대로 가장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거나, 중국이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어민을 동원해 관련 국가를 견제하는 게 회색지대 전략의 사례다.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미래전략연구위원장은 “무인기 영공 침범은 물적ㆍ인적 피해를 내지 않을 정도로 약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의 회색지대 도발”이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북한은 올해만 65발의 미사일을 쏘면서 7000억 원 가까이 쏟아부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게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라며 “북한으로선 비용은 싸면서도 효과는 큰 도발이 필요한 상황이며, 그래서 궁리한 게 회색지대 도발”이라고 말했다.
북한으로선 5대의 소형 무인기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으로 26일 민항기의 운항이 1시간 정도 멈춘 데 이어 27일엔 북한 무인기로 오인한 새떼 때문에 재난 문자 메시지가 발송됐다. 28일엔 미확인 비행물체를 확인하려고 전투기가 새벽에 긴급 출격했다. 안보 불안감이 사회에 퍼져 나갔고, 군 당국은 북한 무인기 격추에 실패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력 대응을 지시한 뒤 국방부는 앞으로 5년간 5600억원을 들여 무인기 추적자산(레이더)과 요격자산(재머ㆍ레이저)을 갖춘다고 밝혔다. 또 아군 무인기 전력을 더 늘릴 계획이다. 무인기 관련 예산을 더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예비역 육군 소장)은 “북한 무인기는 분명한 위협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건 옳지만, 과민하게 반응하면 북한의 노림수에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맞서 한국은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3축체계(킬체인ㆍ한국형 미사일 방어ㆍ대량응징보복) 구축에 쏟고 있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면서 3축 체계 구축에 이어 대(對) 무인기 대응 투자에도 나서야 하는 이중의 부담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군 관계자는 “주요 시설엔 마련된 수준의 무인기 대응체계를 휴전선 따라 쭉 배치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데 군사력을 집중하느라 중국에 뒤늦게 대비한 점을 지난 10월 『국방전략서(NDS)』에서 반성했다.
문제는 북한이 2023년에도 한국의 빈틈을 노려 더 다양한 양상으로 회색지대 도발을 더 자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조남훈 연구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한국이 9ㆍ19 남북 군사합의를 먼저 파기하도록 유도해 강(强) 대 강 대결의 명분을 쌓으려고 북한이 회색지대 도발에 더 기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킹 공격 주체를 가리기 힘든 사이버 공격은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 1순위로 꼽힌다. 방종관 객원연구원은 “한국의 주요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한 뒤 사고처럼 위장하는 테러도 북한이 꾸밀 수 있다”고 예상했다. 회색지대 도발에 덧붙여 북한은 내년에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면서 7차 핵실험의 시기를 가릴 수 있다. 내년 북한의 전방위 도발을 예고하는 이유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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