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명소도 못버티고 눈물 펑펑…목욕탕이 사라진다

김기환 2022. 12.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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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전 서울 원효로 '원삼탕' 내부. 1966년 개업한 장수 목욕탕으로 손에 꼽혔지만 경영난으로 올해 4월 폐업했다. 중앙포토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일대 목욕탕의 ‘터줏대감’ 격이던 ‘원삼탕’은 올해 4월 폐업했다. 28일에도 여전히 목욕탕 간판은 붙어있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1966년 창업해 현재 용산 전자상가 자리에 있던 농산물 도매시장(중앙시장)과 가까워 손님으로 북적이던 곳이다.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올 만큼 명물로 꼽혔지만, 시대 흐름과 고(高)물가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주인 진중길(82)씨는 “폐업하는 날 탕 물을 빼면서 50년 넘게 일한 세신사랑 주저앉아 손 붙잡고 펑펑 울었다”며 “나이도 들었고, 이래저래 들어가는 돈도 다락같이 올라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원삼탕처럼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대중목욕탕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28일 서울시 목욕장업 인허가 정보에 따르면 시내 목욕탕은 지난 2019년 947곳에서 지난해 773곳으로 줄었다. 3년 만에 다섯 곳 중 한 곳(18.3%)이 문을 닫았다. 올해 들어서도 68곳이 폐업했다. 집계에 빠진 숫자도 많다. 정성태 한국목욕업중앙회 회장은 “보일러 등 철거비만 1억원 이상 들어 폐업 신고조차 못 하고 휴업하거나,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목욕탕을 움츠러들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3밀(밀폐·밀집·밀접 접촉)’ 업장으로 각인되다 보니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스·수도·전기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됐다. 목욕탕용 가스요금(영업용2)은 올해 들어 두 차례 오른 데 이어 지난 10월에도 기존 메가줄(MJ)당 15.60원에서 18.32원으로 17.4% 인상됐다. 서울시 욕탕용 상수도 요금은 2020년 사용량에 따라 ㎥당 360~420원에서 올해 사용량과 관계없이 440원으로 올랐다. 내년부터는 ㎥당 500원으로 인상된다. 전기료도 올해 4·7·10월 세 차례에 걸쳐 총 ㎾h 당 19.3원 올랐다. 목욕탕은 업종 특성상 손님을 한 명만 받아도 보일러·난방기를 켜야 해 고정 지출이 많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목욕탕도 사정은 비슷하다.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A 목욕탕에 들어서니 유행 지난 장판 바닥, 낡은 목제 사물함에 담긴 단골손님의 목욕용품, 퀴퀴한 담배 냄새에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30년 가까이 영업했다는 60대 박 모 사장은 “요샌 날씨가 추워도 손님이 참 없다”고 말했다. 실제 손님은 50~60대 3명이 전부였다.

박 사장은 “월 1300만원 하던 매출이 2020년 코로나19 확산 직후 월 800만원까지 쪼그라들었는데 아직도 좀처럼 회복이 안 된다”며 “매달 가스요금 400만원, 수도요금 200만원, 전기요금 100만원씩 들어가는데 내년에도 공공요금이 오른다니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실제 정부는 내년 대대적인 공공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공급난에다 각종 원·부자재 물가가 올라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엔 전기·가스요금을 상당 폭 올릴 수밖에 없다”며 “(요금을 올리더라도) 취약 계층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요금 체계를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목욕탕은 주거 취약 계층의 필수 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당시 목욕탕을 집합 금지 조치에서 제외한 이유다.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봉사하는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영하의 날씨에 동파 피해에 쉽게 노출되는 쪽방촌에선 목욕 시설이 없거나 식수만 온수가 나오고 씻는 물은 안 나와 동네 목욕탕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목욕탕이 사라지면 제대로 씻지 못하거나 시에서 운영하는 목욕탕까지 멀리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타격은 목욕탕뿐 아니라 수도·가스를 많이 쓰는 세탁업, 전기 사용량이 많은 PC방, 각종 곡물과 원·부자재 값 인상에 시름하는 식당 등 소상공인 업종도 비슷하다. 정성태 목욕업중앙회 회장은 “내년에 공공요금이 더 오른다고 해서 고민이 많다”며 “코로나19 여파가 여전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의 공공요금을 적극적으로 감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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