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절대권력과 당내 민주주의

2022. 12. 2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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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힘이 당대표 선출 방식을 ‘당원투표 70%·여론조사 30%’에서 ‘당원투표 100%’로 바꾸었다.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내년 3월 8일로 예정돼 있다. 이미 10여명의 당대표 출마 예상자들이 거론되고 있다. 선출 방식에 따라 후보자 간 유불리가 명확히 갈리는 새 제도를 놓고 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론조사를 제외하는 새 제도에 대해서는 각자의 논리가 있다. 문제는 선출 방식의 내용이 아니라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제도를 바꾸는 데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조직과 절차가 안정을 찾아가는 정치제도화를 정치 발전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 수명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정당 조직과 절차가 안정화될 겨를이 없다. 당대표 선출 방식뿐 아니라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모든 공직 후보 공천제도가 선거마다 바뀐다. 심지어 후보 경선을 진행하는 중에 경선 규칙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민주정치의 기본 운영원리는 절차의 예측 가능성 그리고 결과의 불확실성에 있다.

정해진 원칙과 절차를 헌신짝 버리듯 쉽게 바꾸니 당연히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높고 깊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낙후된 조직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정당이라고 답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끌어가야 할 정당이 가장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지만 정당은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당의 주범은 제왕적 당대표이다.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이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한다. 그렇지만 제왕적 대표의 폐해는 제왕적 대통령에 못지않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그런데 절대권력을 지닌 당대표가 정당을 장악하고 있다.

당대표가 행사하는 절대권력은 공천권에서 나온다. 여야 모두 당대표 선출 때마다 분란이 생기는 것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 후보 공천권 때문이다. 여야 모두 당헌·당규에 그럴듯한 공천 방식을 명시하고 있으나 실상은 당대표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당대표의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공천을 받기 어렵다. 그러니 소속 의원뿐 아니라 당원들까지 당대표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당론에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다른 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혹여나 상대 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면 바로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당 내부에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은 찾기 어렵다. 검사 동일체 원칙보다 더 강한 의원 동일체 원칙이 작동한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다.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아야 의회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비로소 국민이 신뢰하는 대의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표가 가진 절대권력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공천 방식의 제도화와 분권화가 필요하다. 우선 당대표와 공직 후보자 선출 방식을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의원 후보자 선출 과정을 주(州)법으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유권자는 주법에 정해진 방식에 따라 예비선거에 참여한다. 독일 역시 정당법에서 후보자 선출 방식과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정당이 공천제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게 한 것이다. 우리도 당헌·당규가 아닌 정당법에서 당대표와 후보자 공천 방식을 상세히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 절차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다. 누구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제왕적 당대표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공천권에 대한 실질적 분권화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식 예비선거 방식을 하게 되면 공천권은 완전하게 분산된다. 영국처럼 중앙당과 지구당이 공천권을 공유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 완전한 분권은 아니더라도 당대표의 절대권력은 견제할 수 있다. 우리도 한때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공직 후보를 선출한 적이 있다. 그러다 낮은 참여율과 동원 선거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식 공천 방식으로 퇴행했다. 국민참여경선제를 재도입하면 여전히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지만 권력 분산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지키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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