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를 건네는 SF스러운 몇 가지 방법 [은밀하고 친밀하게 SF]

심완선 2022. 12. 2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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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우 작가의 SF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독자가 SF를 친밀하게 느끼도록, 은밀하게 접근해 진입장벽을 슬그머니 무너뜨립니다. 이를 위해 SF 읽는 모습을 생활밀착형으로 전달합니다. <편집자말>

[심완선 SF 평론가]

연말이 다가오니 세시에 맞춰 인사할 일이 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홀리데이. 남은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인사말은 양식이 이미 정해져 있기에 새로이 표현을 짜낼 필요가 없다. 공들여 진심을 담지 않아도 웃으며 축복을 전할 수 있다.

인사말은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를 굴러다니며 정련된, 유서 깊은 기원의 말이다. 안녕(安寧)은 아무런 탈 없이 평안하게 지냈느냐고 묻는 인사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평안하게 지내라고 비는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영어의 굿바이(goodbye)는 신이 함께하기를(god be with you) 빈다는 뜻에서 나왔다. 프랑스어의 아듀, 스페인어의 아디오스도 비슷하다.

인사의 충돌

그리고 '안녕'의 평안이 '굿바이'의 신과 다르듯이, 인사말은 문화적 배경을 드러낸다. 픽션에 나오는 가상의 인사 몇몇은 낯설고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에서 '포스'를 믿는 사람들은 '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빈다. <스타트렉> 시리즈에는 '장수와 번영을'이 등장한다. 연방의 여러 종족 중 '벌칸'은 이 말과 함께 특유의 제스처를 취한다. 그들은 장수하는 종족이며, 이성의 화신인 만큼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헝거게임>은 세 손가락 경례를 만들었다. 주인공 '캣니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혁명의 바람을 지지하며, 존경과 존중을 담아 보내는 인사다.

조금 긴 인사말로는,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J. R. R. 톨킨이 만든 것들이 있다. 옛 언어인 퀘냐어(높은엘프어)를 쓰는 이들은 '태양이 그대의 앞길을 비추리라'처럼 고풍스러운 작별인사를 한다. 한국에서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가 작중의 종교에 따른 독특한 인사를 선보였다. '그랑엘베르'를 따르는 엘프는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빌며 상대를 송별한다. 답하는 이의 인사말도 정해져 있다.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반대로 오해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문화적 충돌이 강조된다. <화성의 공주>(혹은 <화성의 존 카터>)의 주인공 '존 카터'는 화성의 녹색 인간들을 만났을 때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미소를 짓는다. 이는 도리어 싸움의 기폭제가 된다. 화성인에게는 이를 드러내는 것이 공격적인 의사표시였기 때문이다.

<스타트렉>의 호전적인 전투 종족 '클링온'의 인사말은 '네가 원하는 게 뭐냐!'다. 이들에게 온화하게 다가가면 안 된다. 그건 '나는 강하게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너를 깔보고 있다'는 암시가 된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사이에서라면 기존의 인사말은 무용해진다.

그러니 외계인과 최초의 조우(first contact)를 다루는 작품에는 의사소통 문제가 자주 따라다닌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소통이 가능할지조차 알 수 없는,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최초의 이해점을 찾아 더듬더듬 상대를 탐색한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언어학자 주인공은 차츰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힌다. 헵타포드의 말에는 시제가 없다. 이들은 시간을 통합적으로 파악한다. 주인공은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을 접한 덕분에 과거와 미래를 비선형적으로 본다.

코니 윌리스의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는 조금 더 수다스럽다. 어느 날 외계인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고집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을 아주 못마땅하게 쏘아본다. 한번 마주하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렬한 시선이다. 그래도 주인공들은 마침내 소통 방법을 찾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흘러나오던 캐럴과 찬송가에 단서가 있다. 소설은 크리스마스 SF 단편집에도 묶인, 축일에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전통에서 그날은 타인을 만나고, 마음이 누그러지고, 크고 작은 기적을 맞닥뜨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뻔하지만 그래도 좋은, 혹은 뻔해서 좋은 이야기가 어울리는 날이다.
 
 김원우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 아작
SF를 읽기 좋은 핑계

김원우의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그래서 좋은 소설이었다. 제목부터 성탄절과 만국이다. 등장인물이 중간에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도 있다. 만국의 언어로 존재하는, 만국의 단결을 말하는 그 노래가 맞다. 그리고 물론 이 소설에서도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소설의 핵심 요소는 자몽과 외계인과 크리스마스다.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 외계 우주선이 나타나고, 거기서 외계인이 내린다. 모습이 둥그렇고 주황색인 바람에 그들에게는 '자몽인'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처음 내린 외계인만 주황색이고 다른 이들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자몽인'이라는 말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이들은 내리자마자 한국어로 한마디를 말한다. 분명히 한국어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다. 그리고 인간의 반응이 실망스러웠는지 이들은 금세 무반응 상태로 변한다. 몸이 달은 사람들은 그럴싸한 전문가가 있으면 아무나 외계인 연구 캠프로 부른다.

주인공 '나영'은 과거에 자몽을 영어라고 잘못 말한 뒤로 삶이 뒤집힌 사람이다. 나영은 자몽으로 망신당한 이후 10년 동안 자몽의 모든 것을 파고든다. 그러다 획기적인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자몽 논문 빼고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던 나영이 자몽인 캠프에 소환되는 이유다. 소설은 천연덕스럽게 나영을 이리저리 내돌리며 자몽과 외계인을 연결한다.

자몽은 포르투갈어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형태의 말이다. 영어처럼 생겼지만 관련이 없다. 나영이 자몽을 멋대로 생각했듯, 사람들은 자몽인을 자기 식대로 본다. 자기 언어로 말을 걸고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 든다. 하지만 지구에서 쌓인 온갖 언어 규칙이 외계인에게 쉬이 통할 리가 없다. 뭐라도 해보려면 문법과 지식을 내려놓고 생판 기초부터 다시 형성해야 한다. 아주 단순하게 압축한 진심만이 몰이해를 뚫고 상대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 보면, 외계인 앞에 잔뜩 모인 사람들의 말에서 반복되는 기원 하나가 보인다. 모두가 다른 식으로 말하지만 그럼에도 공통되는 메시지 하나가 있다. 표현은 달라도 의미는 비슷하다. 현실에서 다양한 표현이 하나의 인사말, 하나의 기원으로 정형화될 때와 같이, 작중의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소설은 새로운 인사가 형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SF 작품을 추천하는 소설이다. 도서관 사서가 SF 소설을 쥐여주고, 인물들이 자꾸 <스타트렉> 농담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상징하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SF를 좋아하는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혹시 12월 25일이 지나서 크리스마스 소설 읽기가 저어된다면, 1월 2일이 미국에서는 전국 SF의 날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날은 황금기 내내 방대한 글을 발표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생일이다. 새해에 새로운 SF를 읽기에 좋은 핑계다. 해피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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