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웅래 체포안 부결...與 "이재명 방탄 예고편"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노웅래(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소리, 돈봉투가 (오가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파일이 있다”며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여 년간 중요한 부정부패 수사 다수를 직접 담당해 왔지만,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현장이 이렇게 생생하게 녹음돼 있는 사건은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169석의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은 하지만 몰표로 동료 의원에 대한 ‘방탄’을 선택했다. 이에 한 장관은 “국민이 오늘 결정을 오래도록 기억하실 것”이라고 했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한 장관의 본분을 저버린 피의사실 공표와 자기정치는 오늘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의 부결을 불러왔음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노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이날 재적 299인 가운데 총투표수 271표,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21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건 처음이다. 앞서 정정순·이상직·정찬민 의원 체포안은 모두 가결됐다. 본회의에 앞서 야당인 정의당(6석)은 찬성 입장을 밝힌 만큼 “출석한 민주당 의원은 이탈 없이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 의원은 한 장관의 이유 설명에 이어 발언권을 얻어 “방어권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사람 죽이는 수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검찰이 만든 작품”이라며 “뇌물을 받은 것처럼 언론플레이해 재판도 받기 전에 저를 범법자로 만들었고, 저는 만신창이가 됐다”고 동정론을 호소했고, 결국 먹혔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론 반대 당론을 정하진 않았다고 했지만,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선 박홍근 원내대표가 두둔 발언을 하고 “검찰 독재 저지하자”를 외치며 피케팅을 진행했다. 최근 민주당 의원 텔레그램방에는 노 의원의 호소 글에 응원 답글이 달렸고, 절대 체포안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한 민주당 의원은 “우리도 검찰에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정의당 “가재는 게편, 민주당 방탄정당 오명”
한동훈 장관은 표결에 앞서 5분가량 ▶뇌물수수 현장 녹음파일 ▶“또 도와주느냐”는 노 의원 목소리가 담긴 전화통화 녹음파일 ▶청탁받은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노 의원 문자메시지 ▶공공기관에 국회 의정 시스템을 이용해 청탁 내용을 질의하고 회신하는 내역 등 구체적 증거도 나열했다. 통상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안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한 장관처럼 구체적인 증거 내용을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자기 목소리가 나오는 현장 녹음까지 있는데도 수사기관의 조작이라고 거짓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며 “2022년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공직자라도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수사기관의 조작이라고 거짓 음모론을 펴면서 부인하는 경우 예외 없이 구속 수사를 받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한 장관의 설명이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 방탄으로 똘똘 뭉친 계기를 제공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노 의원 체포안 부결엔 여당인 국민의힘뿐 아니라 정의당도 비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있을지 모르는 체포안에 대해 미리 예행연습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며 “민주당은 불체포 특권을 없애자고 하면서도 자당 의원의 이익과 관계될 때는 철저히 방탄국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또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1월 9일이 지나면 국회의 승인 없이도 체포가 가능한데, 그때 민주당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방탄국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가재는 게 편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민주당은 방탄 정당의 오명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초 4선의 노 의원이 뇌물 혐의를 부인하며 기자회견을 처음 가졌을 때만 해도 민주당 의원 중에 회견장에 동행한 이는 없었다. 수수방관하던 민주당이 노 의원 체포동의안 반대로 돌아선 데엔 “이재명 대표를 지키겠다는 의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는 “민주당 스스로 자해정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2배에서 6배로 늘리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만 안전운임제, 근로시간 연장 등 일몰제 관련법은 여야 간 합의 불발로 이날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손국희·박현준·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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