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 신고"한다면서…'병역의 신' 대놓고 자랑한 브로커

하준호, 김정민, 김홍범 2022. 12. 28. 22: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직 프로배구 선수도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병역비리 사건 수사 대상자가 당초 알려진 10여명이 아닌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28일 파악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은혜)는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과 이달 초 합동수사팀을 꾸리고 수사 초기부터 검·경 협력 수사로 '병역브로커' 구모씨를 지난 21일 구속기소했다. 뉴스1

이달 초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과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꾸린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은혜)는 뇌전증 등 외관상 드러나지 않는 질병에 관한 허위 진단서를 받아 신체등급을 낮추는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감면받도록 해준 뒤 거액을 챙긴 혐의(병역법 위반)로 직업군인 출신 병역 브로커 구모씨와 또 다른 브로커 김모씨를 적발해 수사해왔다. 앞서 구씨와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은 법원이 구씨에 대해서만 영장을 발부하자, 지난 21일 구씨를 먼저 구속기소하고 김씨에 대해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 왔다.

직업이 행정사인 구씨는 서울 역삼동에 병역 관련 행정사무소를 차린 뒤 병역 면제·감면 방법을 묻는 의뢰인을 상담하고 많게는 수천만원씩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구씨는 포털사이트 전문가 중개 서비스와 블로그 등에 ‘신체검사, 재검사, 이의제기,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 복무 부적합, 연기 전문 상담’을 내걸고 활동했다. 소개 글엔 “본인은 병역을 면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관련 부서 국방부, 병무청에 해당 사실을 통지한다”고 적어놓곤, 게시판에는 자신의 도움으로 군 면제인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신체검사 결과서를 인증사진으로 걸어 ‘병역의 신’으로 홍보했다.

병역브로커 구모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자신을 '병역의 신'이라고 소개하며 의뢰인이 신체검사에서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결과서를 인증샷으로 홍보했다.

예비역 소령 출신이자 행정사인 김씨는 서울 반포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포털사이트 전문가 중개 서비스에는 자신을 ‘현역·4급·5급 병역판정, 귀가, 현부심(현역복무 부적합심의), 생감면(생계유지 곤란 사유 병역감면) 전문가’로 소개했다. 검찰은 김씨 역시 구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병역면탈을 도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씨는 중개 서비스에 20만원 상당의 ‘2022년 병역판정 신체등급 안내 상담’, 30만원 상당의 ‘1:1 VIP 방문 출장 상담’ 등을 내걸었다. 이 중 30만원 VIP 상담은 235회 이뤄졌다.

구씨와 김씨는 현재 동업 관계는 아니지만, 포털사이트에 김씨의 이름을 검색하면 구씨가 운영하는 행정사무소의 이름이 경력사항으로 소개돼 있다.

'병역브로커' 김모씨는 포털사이트 전문가 중개 서비스에 '1:1 VIP 방문출장 상담예약' 상품을 30만원에 판매했고, 총 235회 상담이 이뤄졌다.

검찰은 이들의 통화 녹취파일 등 제보 내용을 분석해 신빙성 여부를 따져보는 한편, 계좌추적을 통해 파악한 자금 거래의 흐름과 통화 내역 및 진단서 등을 확보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병역 면탈 의심자로는 프로배구선수 조재성(27·OK금융그룹)씨 등 프로 스포츠 선수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2020년 현역 입영 대상인 3급 판정을 받았지만, 지난해 1월 뇌전증 진단을 이유로 재검 끝에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프로축구 1부리그인 K리그와 2부리그인 K리그2 선수 여럿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프로축구연맹은 이날 K리그 소속 구단을 상대로 병역비리 관련 전수조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특정 직역을 대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다. 전체 수사 대상에서 운동선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은 편”이라며 “브로커 관련 의심자들을 조사하다 보니 운동선수가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사 대상자 중엔 운동선수뿐 아니라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자제나 학생 등 일반인이 다수 포함됐다고 한다. 검찰은 브로커에게 상담을 받은 병역 면탈 의심자 중 실제 질병이 있어 정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례가 있는지 등 개개인의 사정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데 병역 브로커 상담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준호·김정민·김홍범 기자 ha.junho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