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 광풍···대한민국 제조업이 비어간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2. 12. 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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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도 빠져나가고…” 구미공단의 눈물
韓 유턴 성과 초라…‘제조업 강국’ 빨간불

경상북도 일대에 한파·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2월 21일. 구미국가산업단지(구미산단)는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였다. 급격히 떨어진 기온만큼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겨 내부 분위기는 한산하기만 하다. 구미산단 거리 곳곳에는 화물차 행렬 대신 ‘공장 임대’ ‘공장 매매’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바람에 흔들렸다. 주요 단지마다 폐업해 텅 빈 공장이 수두룩했다.

구미산단에서는 최근 대기업 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했다. 코로나로 인한 불경기와 국내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한 판단이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물산 직물 공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패션 산업 불황, 인건비 상승으로 수입 원단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최근 4년간 누적 적자가 80여억원에 달했다. 급기야 지난 11월 말 공장 문을 닫았다. 앞서 2020년에 LG전자가 TV 생산 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미에는 항만이 없고 인력·원자재 수급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해 이미 삼성 공장 라인이 빠져나간 상황이다. LG 입장에선 글로벌 수출 거점 확보를 위해 인건비가 낮은 인도네시아로 이전한 듯싶다”고 설명했다.

내수 경기 부진으로 구미산단에 입주한 중소기업들도 줄줄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 구미산단의 A제조업체 관계자는 “요즘 들어 공장 가동률이 15%가량 낮아지고 물량도 많이 떨어졌다. 중소기업 특성상 금리 인상이 치명타인 데다 우수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인력이 없어 공장 운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구미산단 내 근로자 수는 연일 급감하는 중이다. 경기 불황 여파로 2016년 10만명 선이 무너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2년 9월 기준 8만3475명으로 줄었다. 공장 가동률도 하락세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구미산단의 평균 가동률은 2021년 12월 75.6%에서 2022년 9월 71.2%로 하락했다. 공장 매물을 내놓는 업체가 늘었지만, 건축물·원자잿값이 올라 아이러니하게도 공장 매물 가격은 오르는 실정이다.

산단 내 공장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B부동산업체 대표는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공장 매물도 많이 쌓여간다”며 “건축물과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장 가격은 3.3㎡당 180만~190만원에서 최근 280만원 선으로 오히려 올라 거래가 드물다”고 말했다. 구미산단 관계자는 “리쇼어링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지방 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은 저마다 리쇼어링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우리도 리쇼어링에 주력하지만 성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오히려 구미산단 같은 주요 산업단지 기업들은 잇따라 해외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국내로 복귀한 기업 수는 26개에 그쳤다. 그나마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대기업은 아예 없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이 해외에 새로 설립한 법인 수는 무려 2230개에 달한다.

반면 미국 유턴 기업은 2014년 340곳에서 2021년 1844곳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일례로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최근 독일 베를린 배터리 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하고 미국 유턴을 결정했다. 제너럴모터스(GM)도 LG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 중이다. 미국 외에도 EU, 일본 등은 자국 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금 혜택을 늘리며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다.

한국은 2013년 말부터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유턴법’을 시행하면서 국내 복귀 기업 지원을 강화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국내 복귀를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내에 복귀하더라도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지방에 복귀할 때만 ‘5년간 100%, 이후 2년간 50%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 혜택을 준다. 하지만 수도권에 복귀하면 이 같은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게다가 반도체 같은 공급망 핵심 업종이 아니라면 해외 시설을 최소 25% 이상 줄여야만 유턴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해외 사업장을 축소하지 않아도 되고, 수도권으로 복귀하는 기업에도 지방 이전 기업과 동일한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일본과 대비된다.

1990년대 말 베트남 호찌민으로 사업장을 옮긴 섬유 제조업체 C사는 리쇼어링을 검토했지만 결국 계획을 접었다. 한국 인건비가 베트남 현지의 10배에 달하는 데다 노동자 평균 연령도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력 노동자가 50대 이상인 반면 베트남은 30~40대로 생산성 측면에서 해외 사업장 유지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주변 도로에 ‘공장 임대·매매’라고 적힌 전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윤관식 기자)
공급망 재편에 각국 리쇼어링 사활

미국, EU 등 첨단 기업 유치 속도전

그나마 한국에 공장을 둔 ‘집토끼’도 자꾸 해외로 빠져나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1년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규모는 100조4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섰다.

대표적인 투자 지역이 미국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 이후 미국 투자가 급증하는 모습이다.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 한해서만 소비자들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4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핵심 광물이 중국 등 다른 국가에서 생산됐을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에 ㎾h당 35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도 준다.

이를 두고 본 국내 전기차 배터리, 소재, 부품업체들은 잇따라 대미 투자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 30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해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연산 12만t 규모의 미국 최대 양극재 공장이다. SK온과 미국 포드의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도 미국 켄터키주 그린데일에 총 86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 전기차 배터리업체뿐 아니라 현대차 등 완성차업체도 잇따라 미국 투자를 늘리는 모습이다.

미국의 IRA 효과가 쏠쏠하자 다른 국가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EU는 IRA와 유사한 ‘유럽원자재법’을 준비 중이다. 일본 역시 반도체 등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 첨단 기술 연구개발 민관 협력, 군사 전용 기술의 특허 비공개 등을 담은 ‘경제안보법’을 제정하는 등 ‘자국우선주의’가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세계 주요국이 자국 중심으로 첨단 산업을 재편하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가 늘면 상대적으로 한국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리쇼어링 기업은 줄고 국내 기업이 너도나도 해외로 빠져나가면 수출이 급감하고 제조업이 절체절명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수출 증가세가 새해부터 정체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원자재 수입 관련 세제 지원 확대 등 수출 실적 개선을 위한 환경 조성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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