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수혜 지역 ‘목동·노원’…시작 빨라지겠지만 거래는 잠잠
새해부터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인 안전진단 관련 규제가 5년여 만에 완화된다. 이에 따라 30년 이상 노후 단지의 재건축 사업 추진이 빨라질 수 있게 됐다. 그간 고배를 마실까 정밀안전진단을 미뤄온 단지들이나 애초에 안전진단에 나서기도 주저했던 단지들이 앞다퉈 안전진단 신청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의 핵심은 현재 50%인 구조 안전성 비중을 30%로 낮추고 지자체 판단에 따라 2차 정밀안전진단인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즉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안전진단 E등급의 점수 범위는 현재보다 확대해 신속한 사업 진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구조 비중↓ ‘2차 검토’ 사실상 폐지
우선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 비중을 30%로 낮추고 주거 환경과 설비 노후도 비중은 각각 30%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2018년 3월 강화된 기준에 따라 현재 안전진단 평가 항목별 중 구조 안전성 비중은 50%에 달한다. 구조 안전성은 붕괴 위험을 평가하는 것인데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요소라 재건축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주거 환경(주차 대수·생활 환경·일조 환경·층간소음·에너지 효율성 등)과 설비 노후도(난방·급수·배수·기계·소방 설비 등) 비중은 각각 15%, 25%로 낮아 아파트 노후화에 따른 주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주거 환경과 설비 노후도 평가 비중을 높인 개선안이 시행되면 구조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주차 공간이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 심한 아파트, 또는 배관 누수·고장이 잦거나 소방 시설이 취약한 아파트처럼 주민 생활이 불편한 경우에도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2차 정밀안전진단(공공기관 적정성 검토)을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한 점도 눈길을 끈다.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지자체가 요청할 때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도록 한 것은 사실상 폐지 수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단지는 의무적으로 적정성 검토를 거쳐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 안전진단 판정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있었다. 적정성 검토 기간은 통상 7개월로, 1차 안전진단(3~6개월)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1500가구 기준 1차 정밀안전진단에 2억6000만원이 발생하는데, 적정성 검토를 실시하면 1억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안전진단 평가 총점에서 조건부 재건축의 범위도 축소했다. 안전진단 결과 ‘재건축 확정’인 E등급의 점수 범위를 확대하는 식이다. 현재는 안전진단 평가 항목별 점수를 합한 총점이 30점 이하(E등급)인 경우 ‘재건축’을 바로 확정하는데, 앞으로는 45점 이하를 받는 경우에도 곧바로 ‘재건축’ 판정을 받아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조건부 재건축’인 D등급의 점수 범위는 현재 30~55점 이하에서 45~55점 이하로 축소된다. 조건부 재건축 범위가 넓어 사실상 재건축 판정을 받기 어려웠던 문제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당장 재건축’ E등급 0곳→12곳 늘어
정부는 2022년 12월 중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을 행정 예고한 뒤, 2023년 1월 중 시행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는 개정안에 따라 재건축 연한을 채운 노후 단지들이 한결 수월하게 안전진단을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 2018년 3월 이후 2022년 11월까지 56개월 동안 안전진단 절차를 완료한 46개 단지 가운데 ‘재건축(E등급)’ 판정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54.3%(25개 단지)가 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했고, 45.7%(21개 단지)만 ‘조건부 재건축’인 D등급을 받았다. 규제 강화 전인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4개월 동안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전국적으로 총 139건, 연간으로는 49건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참 적은 편이다.
그러나 개선된 기준을 앞의 46개 단지에 적용하면 12개(26.1%)는 곧바로 재건축이 가능한 E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현행 기준으로 ‘유지보수’에 해당돼 사실상 재건축이 막혔던 25개 단지 가운데 14곳은 개선안을 적용하면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개선안을 적용해 유지보수에서 조건부 재건축으로 전환되는 단지는 서울 ▲노원 1곳 ▲양천 2곳 ▲영등포 1곳을 포함해 경기 ▲남양주 1곳 ▲부천 1곳 ▲수원 1곳 ▲안산 1곳과 ▲부산 2곳 ▲대구 3곳 ▲경북 1곳 등이다. 양천 2곳은 목동신시가지9단지와 11단지로 파악됐다.
정리하면 앞에 예로 든 46개 단지 가운데 12개 단지(26.1%)는 새해부터 곧바로 ‘재건축 확정’, 23개 단지(50%)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전체의 4분의 3가량인 35개 단지에서 재건축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새로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단지는 물론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했거나 현재 안전진단을 수행 중인 모든 단지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공공기관 적정성 의무 검토 대상이나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고 진행 중인 단지에도 적용된다.
국토교통부가 파악한 서울 2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가운데 2023년 1월 기준으로 재건축 연한(30년)이 지나는 단지는 389곳에 달한다. 서울에서 단지 수로는 노원구가 79곳으로 가장 많고 강남구 46곳, 송파구 23곳, 도봉구 34곳, 양천구·강서구 각 22곳, 영등포구 20곳 등이다. 수도권에는 경기 471개 단지 28만5000가구, 인천 260개 단지 14만6000가구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1120개 단지, 151만가구에 이른다.
매수 심리 바닥…‘재초환’도 해결해야
안전진단 기준 완화 소식을 가장 반기는 곳은 목동, 상계, 태릉 등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준공된 서울 아파트 단지들과 1기 신도시 등이다. 주로 재건축 가능 연한(30년)을 넘겼거나 곧 넘길 예정이지만 구조 안전성 부문을 충족하지 못한 탓에 그동안 재건축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단지들이다. 이 가운데 재건축 사업성이 비교적 높은 단지들과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발표를 기다리며 2차 정밀안전진단을 연기해온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의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 지구단위계획이 통과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와 노원구 태릉우성 등은 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하며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총 14개 단지로 구성된 2만6629가구 규모의 목동신시가지는 6단지를 제외하면 모두 안전진단 단계에 머물러 있다. 1~5단지, 7·10·13·14단지는 2차 정밀안전진단 절차를 밟던 중 보완 서류를 내지 않으면서 사업이 멈췄지만 다시 재개하자는 데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1차를 통과한 8·12단지도 2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목동신시가지는 2022년 11월 초 지구단위계획을 통과한 데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서울시의 ‘35층 룰 폐지’ 등으로 재건축 사업성과 속도 모두 챙길 수 있게 됐다.
앞서 2차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바 있는 목동9단지와 목동11단지도 빠른 시일 내에 안전진단에 다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목동9단지와 목동11단지는 안전진단 기준 개선안을 적용하면 ‘조건부 재건축’으로 통과된다. 목동9단지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는 53.3점을 받았지만 다음 단계인 적정성 검토에서 58점을 받아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개선안은 55점만 받아도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만큼 다시 안전진단을 밟으면 재건축 가능 판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목동9·11단지는 개선안 발표 전 탈락해 현 제도로는 안전진단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미 한 번 진행했기 때문에 절차는 단축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노후 아파트가 많은 노원구에도 호재다. 노원구 상계동, 하계동 등지에는 준공 30년을 넘긴 아파트가 현재 45개 단지, 6만7000여가구나 있어서다. 이 가운데 안전진단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만 총 38곳. 국토부에 따르면 이 중 3개 단지는 이번 기준 완화로 재건축이 가능한 E등급을 무난히 받아낼 수 있게 됐고, 2개 단지는 노원구가 기본 사항 검토 절차를 거쳐 적정성 검토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노원구는 ‘노원 재건축·재개발 신속추진단’ 같은 지원 체계까지 구축하는 등 지자체 차원에서도 재건축 추진에 적극적이라 노원구 단지들이 적정성 검토 없이도 안전진단을 통과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노원구에서는 상계주공1·3·6단지와 상계한양, 하계장미 등이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태다.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극동·건영·벽산’과 상계주공2·4·7·9~14·16단지 등은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완화된 기준을 적용받을 예정이다. 또한 2021년 적정성 검토에서 60.07점을 받아 통과하지 못했던 공릉동 ‘태릉우성’도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되면 54.25점을 받아 재건축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기대가 높다.
강남권에서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초구 ‘삼풍아파트’와 ‘양재우성아파트’ 등이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한 뒤 안전진단 기준 완화 소식을 맞은 단지들이다. 2차 안전진단을 연기해온 ‘반포미도2차’와 ‘방배임광3차’ 등도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53.37점)을 받아 ‘조건부 재건축’으로 통과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5540가구)’도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생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매수 심리는 ‘바닥’
“재초환 등 추가 규제 완화 필요”
다만 재건축 첫 걸림돌이 전격 완화됐다는 소식에도 목동, 상계동 등 주요 수혜 지역 아파트 시장은 ‘거래 절벽’ 현상이 여전하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 소식 직후 목동신시가지에서 사고 팔린 아파트는 11단지 전용 51.48㎡(12월 16일, 9억4000만원)가 유일하다.
목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앞서 ‘목동신시가지 재건축 지구단위 계획안’이 발표될 때는 매물을 거두는 집주인이 많았는데, 안전진단 기준 완화 발표 직후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물은 오히려 30%가량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정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도 “안전진단을 통과해도 재건축 사업은 10년 이상 봐야 하고, 당장 대출 금리 부담이 큰 탓에 매수·매도 문의 전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첫 관문인 안전진단 기준 완화만으로 재건축 시장이 활성화될지도 미지수다. 특히 최근처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재건축 최종 관문으로 통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규제 완화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 추진 초기 단지들에는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호재가 될 수 있다”면서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재건축 대못은 여전히 주요 변수로 꼽히는 만큼, 이들 규제 완화까지 동반돼야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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