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략 나선 현대백화점···‘전국구 유통 名家’ 눈앞에
“더현대 서울 성공 이후 회사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그동안 백화점업계 3등 이미지가 강하지 않았나. 현대백화점이 백화점업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에 내부 직원들 모두 상당히 고무된 모습이다.”
현대백화점그룹 직원이 전하는 그룹 내부 분위기다.
현대백화점이 환골탈태 중이다. 롯데와 신세계에 밀리던 백화점 ‘업계 3등’ 이미지는 이제 없다. 적극적으로 점포를 강화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그동안 ‘내실 경영’에만 집중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판교점과 더현대 서울로 수도권을 평정한 기세를 몰아 지방 점포 확장에도 활발히 나선다. 대구점을 리뉴얼한 ‘더현대 대구’를 12월 16일 개점했다. 광주에는 ‘더현대 광주’ 건립 계획 제안서를 제출했다. 서울 강자 이미지를 넘어 전국구 백화점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다.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현대백화점이 과거 ‘유통 명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판교점과 더현대 서울로 ‘판 뒤집어’
2010년대 중반, 현대백화점은 정체기를 맞이했다. 내실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악재가 줄줄이 현대백화점을 덮쳤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운영해오던 코엑스몰 연장 계약에 실패한 데 이어 위니아만도, 홈플러스 등 인수가 불발됐다. 투자했던 쇼핑몰 사업 ‘파이시티’는 제대로 삽을 뜨기도 전에 파산했다. 부산 센텀시티, 천안 펜타포트, 서울 양재 등에 신규 출점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부 지방 점포는 지독한 부진에 시달렸다. 한때 부산 최고 고급 백화점으로 불리던 부산점은 만성적인 부실 사업장으로 전락했다. 한때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섰던 매장이 2010년대 후반에는 전국에서 매출이 하위권에 머무르는 점포로 바뀌었다. 광주점은 2013년에 아예 철수했다.
현대백화점이 주춤하는 사이 경쟁자들은 빠르게 치고 나갔다. 고급화·대형화 점포를 앞세운 신세계백화점이 세를 급격히 불렸다.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 입지도 여전히 탄탄했다. 백화점업계는 현대백화점이 포함된 3강 구도에서 롯데와 신세계의 2강 구도로 재편됐다.
반전의 계기가 절실할 무렵, 현대백화점은 승부수를 던졌다. 2015년 판교점을 개장했고 2021년 여의도에 ‘더현대 서울’을 출점했다.
두 매장 모두 모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판교점은 서울이 아닌 경기 남부권에 낸 첫 대형 매장이었다. 출점 당시만 해도 우려가 앞섰다. 대형 백화점이 서울 외 지역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판교점은 대성공을 거뒀다. 판교 신흥 부자들을 비롯해 용인, 성남 등 경기 남부권의 ‘큰손’들을 끌어모으며 매출이 급등한 것. 업계에서는 2023년 현대백화점 판교점 연매출이 2조원에 근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국내 백화점 중 연매출 2조원이 넘는 매장은 신세계 강남점뿐이다.
판교점이 분위기 전환 역할을 했다면 ‘더현대 서울’은 현대백화점의 위상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현대 서울 역시 초기에는 모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의도 상권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선 사례가 없었던 탓이다. 금융가 이미지가 강하던 여의도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백화점이 성공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많았다. 또 코로나19 유행, 다소 아쉬운 명품 브랜드 라인업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예측은 빗나갔다. 독특한 디자인, 풍부한 식음료 매장, ‘힙’한 브랜드 유치 등 새로운 전략이 적중하면서 순식간에 서울 서남권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떠올랐다.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5억원을 기록, 판교점이 갖고 있던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실적도 실적이지만 더현대 서울의 백미는 ‘화제성’에서 나타났다. 기존 백화점과 다른 외관과 내부 디자인이 연일 화제를 모았다. 백화점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롯데와 신세계를 제치고 현대백화점이 백화점 유행을 주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주요 점포의 활약에 힘입어 실적도 날개를 편다. 현대백화점은 2022년 연간 4조원이 넘는 매출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는 2022년 현대백화점이 매출 4조6942억원, 영업이익 3758억원(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 기준)을 기록한다고 내다봤다. 이는 2021년 대비 매출 31%, 영업이익은 42% 증가한 수치다.
이제는 지방 상권 정조준
더현대 대구 첫 삽, 광주에도 도전
과거의 위상을 생각하면 현재 성적은 다소 아쉽다. 각 지방 현대백화점은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로 지역 상권을 주름잡았다. 특히 부산점과 대구점은 지역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매장들이었다. 그러나 부산점은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지역 명품 백화점 1위를 자랑하던 대구점은 2016년 대구 신세계가 들어서면서 왕좌를 빼앗겼다. 에르메스, 샤넬,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가 현대백화점을 이탈, 신세계로 떠났다. 매출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졌다.
현대백화점은 빼앗긴 옛 위상을 회복하려 한다. 업계의 판을 뒤집은 ‘더현대’ 브랜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첫 시작은 ‘더현대 대구’다. 기존 매장인 현대백화점 대구점을 재단장한 매장이다. 약 1년간의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12월 16일 ‘더현대 대구’로 재개장했다. 더현대 서울의 성공 노하우를 철저히 옮겨 심었다. 영업 면적은 줄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대했다. 백화점을 체험 공간으로 생각하는 2030세대 고객을 겨냥했다. ‘더현대’ 브랜드 파워를 통해 대구 신세계에 빼앗겼던 지역 1위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광주광역시 복합 쇼핑몰 건립 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광주시 북구 일대 전남 방직 공장 부지에 ‘더현대 광주’ 건립 계획을 담은 사업제안서를 시에 제출했다. 스타필드 광주로 제안서를 낸 신세계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백화점 내부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 ‘뭘 해도 업계 3등’이라는 의식이 많이 옅어졌다”며 “업계 1위 롯데는 물론, 최근 트렌드를 주도하는 신세계와 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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