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M&A 뛰어든 HD현대그룹…대우조선 아픔? STX重 인수로 만회한다
HD현대그룹으로 사명을 바꾼 현대중공업그룹이 선박용 엔진 업체 STX중공업 인수전에 전격 뛰어들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 아픔을 딛고 인수합병(M&A)에 성공할지 재계 관심이 쏠린다.
엔진사업부와 시너지 효과 기대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STX중공업 지분 47.81%를 보유한 사모펀드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와 매각 주관사 삼정KPMG는 최근 지분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마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부문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외 기업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STX중공업 인수전에 전격 뛰어든 배경은 뭘까. 선박용 엔진, 조선 기자재 제조업을 해온 STX중공업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TX중공업은 선박용 디젤 엔진과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엔진 등에 강점이 있는 회사다. 글로벌 환경 규제로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엔진을 포함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점이 매력 요인이다.
실적도 괜찮다. 2022년 3분기 누적 매출 1321억원, 영업이익 31억원을 기록했다. 덩치는 크지 않지만 전년 동기(매출 1169억원, 영업손실 122억원) 대비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은 STX중공업 인수를 통해 자회사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기존 대형 엔진뿐 아니라 중소형 엔진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와 STX중공업, HSD엔진(옛 두산엔진) 등 국내 대표 엔진 제조사 3곳을 합치면 전 세계 선박용 엔진 점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급증하는 선박용 엔진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예비입찰에 참여하게 됐다.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엔진 기술을 접목시켜 엔진 생산 종류를 중소형 엔진까지 다양화하고 그룹 내 조선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미포조선에 보내는 중형선 엔진 기계 물량을 STX중공업에 분산하고, 현대중공업은 잉여 설비를 대형선 엔진 기계 제작에 집중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STX중공업은 2014년 STX그룹이 해체되면서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를 받아왔다. 2016년 회생 절차가 시작된 이후 2018년 엔진기자재, 플랜트사업부 분할 매각으로 새 주인을 찾았다. 사모펀드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가 엔진기자재사업부를 987억원에 인수해 지금의 회사로 키워냈고, 글로벌세아그룹이 플랜트사업부를 161억원에 사들여 ‘세아STX엔테크’로 이름을 바꿨다.
‘십빌더’에서 ‘퓨처 빌더’로 변신
현대중공업그룹이 M&A 시장에 뛰어든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야심 차게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 이후 첫 번째 M&A 시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2022년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 전문 기업’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 아들 정기선 HD현대 사장 주도로 신사업 발굴에 주력해왔다. HD현대는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다. 정 사장은 “세계 1위 십빌더(Shipbuilder·조선사)에서 인류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퓨처 빌더(Future Builder·미래 개척자)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강조해왔다.
일례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그룹 내 건설기계 사업을 키우면서 기존 조선 사업과 함께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 부문은 중국 시장 부진으로 한때 비상 경영을 선포했지만 최근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현대건설기계의 경우 북미,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 실적이 회복되면서 2022년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0.3% 증가한 63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3분기 매출 1조1769억원, 영업이익 747억원을 올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1%, 122% 증가했다.
또 다른 주력 사업인 에너지, 전력기기 부문에서도 속속 성과를 내는 중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전력기기·에너지 솔루션 계열사인 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신재생에너지 자회사 GE리뉴어블에너지와 손잡고 해상 풍력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현대일렉트릭은 GE의 초대형 해상 풍력 터빈 ‘할리아드-X’의 핵심 부품인 ‘나셀(로터에서 얻은 회전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기 위한 발전 장치)’과 발전기 생산을 담당해 국내 공급망을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정유 계열사 현대오일뱅크 역시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에도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5% 증가한 7022억원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조선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현대중공업그룹 핵심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12월 14일 기준 194척, 236억달러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174억4000만달러)의 135%를 달성했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운반선 건조 계약을 대거 따낸 영향이 크다. 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2척의 LNG 운반선을 수주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오랜 불황을 딛고 글로벌 조선업 호황을 맞은 만큼 이참에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박용 엔진 기술력을 갖춘 STX중공업 인수에 나선 듯싶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 1위 조선사인 만큼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M&A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지만 내부는 시끌시끌하다. 야심 차게 추진해온 현대삼호중공업 기업공개(IPO)가 계속 지연되는 데다 끊이지 않는 노사 갈등도 변수다.
현대삼호중공업은 2022년 내내 IPO를 추진해왔지만 결국 2023년 이후로 연기됐다. 국내 증시가 침체되면서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면 제값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회사인 한국조선해양 소액 주주 반발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소액 주주들은 자회사 현대삼호중공업 상장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현대중공업이 상장하는 과정에서 한국조선해양 주가 급락 사태를 겪은 만큼 현대삼호중공업 상장으로 또다시 한국조선해양 주주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1888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중 현대삼호중공업 영업이익이 1481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중공업(153억원), 현대미포조선(93억원)보다 훨씬 수익성이 높다. 현대삼호중공업은 2022년 3분기 누적 기준 45척, 78억7400만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45억달러)의 175%를 달성했다. 한국조선해양 주주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선업과 함께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사업으로 자리매김한 건설기계 부문 실적도 아직까지 불안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중국 건설 경기가 불안해 신흥 시장 회복만으로 호실적을 내기가 만만찮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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