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추국' 위한 한국판 인·태 전략 공개…'中반발' 관리는 과제
한국을 ‘GPS(Global Pivot State·글로벌 중추 국가)’로 이끌 윤석열 정부의 외교 청사진이 공개됐다. 정부는 28일 33페이지 분량의 한국판 ‘인도·태평양(인태)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인태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은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실을 통해 내년부터 구체화될 전망이다.
인태 지역은 세계 인구의 62%, 국내총생산(GDP)의 62%, 무역량의 46%를 각각 차지하고, 그 비중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또 인태 지역을 중심에 둔 미·중 경쟁이 거세지면서 통상·무역 등 경제 사안은 물론 군사·안보의 핵심 요충지로 급부상했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인태 전략을 발표한 이유다. 정부 역시 인태 지역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핵심 협력 지역으로 보고 있다.
한국판 인태 전략은 ‘3대 비전, 3대 원칙, 9개 과제’로 구성됐다. 우선 자유·평화·번영을 3대 비전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가치 외교’와 일맥상통한다. 3대 원칙으로는 포용·신뢰·호혜가 제시됐다. 한국판 인태 전략이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고립시키는 적대적 움직임이 아니란 의미다.
북한만 신경쓰던 韓, 시야 넓힌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인태 전략 설명회'에서 한국판 인태 전략을 “우리나라 외교 정책 역사의 분수령”이라고 표현했다. 인태 전략을 발판으로 글로벌 이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모습에서 탈피해 국제사회 움직임을 주도하는 선도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긴 표현이다. 실제 그동안 한국은 북한 문제를 중심에 두고 외교 전략을 구상하곤 했는데, 이번 인태 전략은 이같은 ‘대북정책 중심성’을 탈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며 한반도 문제에만 주력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인태 전략을 통해 한국의 전략적 지평은 한반도를 넘어 설정될 것”이라며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맞춰 국제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국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7개월 만에 '인태 전략 발표'
이같은 일련의 과정엔 인태 전략을 외교 전략인 동시에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격상’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은 2007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만들었지만, 이를 지역 전략 차원으로 본격 추진한 건 미국이다. 특히 미국은 행정부 교체와 관계없이 꾸준히 인태 전략을 꾸준히 계승·발전시켜 왔다.
오바마부터 바이든까지, '인태' 집중하는 美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ABC(Anything but Trump·트럼프식 정책 뒤집기)’로 대표되는 반(反) 트럼프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유독 인태 전략만큼은 계승했다. 그렇게 나온 게 2022년 2월 인태 지역에서의 외교·안보 전략을 종합한 ‘인도·태평양의 약속’이다. 여기엔 오바마-트럼프-바이든에 걸쳐 10여년간 미국이 추구한 인태 전략의 중심엔 늘 중국 견제 의도가 담겼다.
미국의 이 같은 인태전략 활용법은 한국판 인태전략 역시 중국 견제 의도를 내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과 미국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반발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실제 이날 인태 전략이 발표된 직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은 한국이 역내 안보와 번영에 대한 우리 공동의 약속을 반영함으로써 새로운 인태 전략을 채택한 것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한국판 인태 전략에 대해 “각국이 협력해 지역 평화의 안정과 발전,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타적인 소그룹에 반대하는 것이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며 “한국이 중국과 함께 중·한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동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中 리스크' 관리는 과제
하지만 보고서 곳곳엔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내세워온 예민한 내용이 담겼다.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표현이 대표적인데 이는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또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선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입장을 비판하는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실제 미국은 남중국해 인근에 군함을 파견하는 군사 작전을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명명하며 중국과의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갈등의 최전선에 놓인 대만 해협에 대해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것 역시 중국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인태전략 설명회에 토론자로 나선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한국이 ‘인태 전략’이라는 용어를 쓴 것에 대해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계속 보내왔지만, (이번 전략 발표는) 인태 국가로서 한국이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서도 “한국판 인태 전략은 경제적 교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와 인권, 가치, 규범까지 이야기하고 이런 부분은 중국을 더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중국 측에도) 이같은 내용을 꾸준히 설득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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