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에 일본 이긴 용감한 할머니의 죽음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건강 악화로 26일 밤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빈소가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경안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
ⓒ 연합뉴스 |
그 이옥선 할머니와 동명이인인 또 다른 피해자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살아 계신 분은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이고, 돌아가신 분은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다. 대구 출신 이옥선은 나눔의집과 속리산을 오가며 생활했다. 나눔의집 홈페이지는 그를 "이옥선(속리산)"으로 표기한다.
주민등록상으로는 1930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8년생인 대구 출신 이옥선은 14세 때인 1942년에 강제연행됐다. 집에 들이닥친 일본 군인은 일본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요구했다. 군인이 와서 입대도 아닌 취직을 알선하는 이상한 상황 앞에서 부모님은 보내지 않겠다며 저항했다.
하지만 14세 소녀는 결국 끌려갔고, 일본 공장이 아닌 만주 위안소에 갇혔다. 그곳에서 3년간 일본군 성노예의 굴레에 갇혀 지냈다. 이때 당한 폭행으로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불편하게 살았다.
그를 착취한 일본군과 위안소는 한국이 해방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소식을 들은 것은 근처에 사는 중국인한테서였다. 그를 강제연행했던 일제가 이번에는 그를 버려두고 떠난 것이다.
이옥선은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신의주까지 온 다음,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머물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만주에 갔다 왔다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그 뒤 고향에서 떨어진 속리산 마을을 근거지로 약초 행상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93년이다. "뭐 좋은 일이라고 알리냐?"며 쉬쉬할 때였다. 피해자들이 죄인처럼 숨죽여 살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용감하게 나서서, 자신을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했다.
그러나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었다. 정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한을 풀고 피해를 조금이나마 복구하고자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피해자로서 인권운동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법정 투쟁과 수요시위(수요집회) 참여 등이 그의 핵심 무기가 됐다.
'노쇼'로 일관한 일본
그는 이 투쟁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2013년 8월, 그와 배춘희(2014년 별세) 등을 포함한 피해자 12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재판이 아닌 조정으로 원만히 해결하고자 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2016년 1월부터 정식 재판이 시작됐다. 그러자 일본은 소송서류 송달을 거부하며 시간을 지연시켰다. 1945년 패망 뒤에 그를 만주에 버려두고 사라진 일본 정부는 이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노쇼' 정책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결국, 법원 게시판과 신문 등에 서류 내용을 게시하고 일정 기간 경과 뒤에 상대방이 수령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을 거쳐 그는 소송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다가 작년 1월 8일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는 "당시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가 모두 인정되고 이로 인해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라며 "원고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라고 선고했다. 1인당 1억 원씩의 배상을 선고한 이 판결로 그의 승리는 확정됐다. 소송서류 수령조차 거부한 일본은 항소 역시 하지 않았다.
▲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한일 식민지배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한국 정부가 재판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
ⓒ 연합뉴스 |
하지만 패소 뒤에도 일본은 노쇼로 일관했다. 그래서 그는 1억 원을 받아내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국가는 타국 재판에서 열외'라는 국가면제(주권면제)이론을 내세우며 노쇼를 합리화했다.
선고 당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법상으로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라며 "이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법원이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없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것은 잘못이라고 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스가 총리는 한일 식민지배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한국 정부가 재판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삼권분립을 무시하면서까지 판결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일본은 재판절차뿐 아니라 강제집행 절차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 법원은 강제집행을 신청한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금전을 마련하고자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을 수색했지만, 일본의 비협조로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 법원이 소송 서류를 보내면, 일본 정부는 수령 거부로 대응하고 있다. 서류가 도착하는 순간, 일본 정부는 '빈집'이 되어 버린다.
이중적인 일본의 태도
일본은 국가면제이론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만, 사실 이 이론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이론은 아시아·아프리카 침략을 벌일 당시의 서양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국 국가권력을 보호하고자 만든 장치에 불과하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 기초한 법이론이 아니라 19세기 서양 강대국들의 필요에 따라 등장한 것일 따름이다.
이 이론은 20세기 들어 대중과 비(非)국가 분야가 강력해지면서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1926년에는 국유 선박일지라도 통상 목적에 이용될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배제한다는 국유선박면제규칙통일협약(브뤼셀협약)이 채택됐고, 1972년에는 국가면제 범위를 제한하는 유럽국가면제협약이 체결됐다. 아직 발효되지는 않았지만 2004년에는 '국가 및 그 재산의 관할권 면제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유엔 국가면제협약)도 체결됐다.
국가의 '노쇼'를 점차 제약하는 이 흐름에 일본도 편승하고 있다. 일본이 2011년 제정한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인명이나 유체물을 손상시킨 외국 국가행위의 전부 혹은 일부가 일본 내에서 벌어진 경우에는 외국 국가권력을 일본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 규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 서지 않는다며 이옥선의 승소를 무시했지만, 이미 그 전에 일본은 자국 국민의 인명뿐 아니라 물건이 손상된 경우에도 국가면제를 배제하는 법률을 만들어놓았다. 일본의 태도가 이중적임을 알 수 있다.
국가면제이론은 확립된 법 원칙도 아니고 보편적인 통설도 아니다. 설령 이것이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위안부 문제에서만큼은 이것을 주장하기 힘든 현실적 이유가 있다.
1993년 8월 4일, 정부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내각 관방장관은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라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라고 표명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처럼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였다는 점은 일본 정부도 인정했다. 이렇게까지 시인한 사안에 대해 국가면제를 운운하는 것은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양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93년이면 이옥선이 용기를 내어 위안부 피해 사실을 한국 정부에 신고한 해다. 이 해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과거 범죄를 시인했다. 그런 일본이 '국가는 열외'라며 이옥선 재판을 외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 일본의 대응으로 인해 이옥선 할머니의 역사적 승리는 아직 최종 관문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그는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투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배상금을 내놓으면 사후적으로나마 할머니는 자신의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다. 그 사과문과 배상금이 그의 영정 앞에 놓이게 만드는 일은 한국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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