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하얀방’서 고문 당해” 주장…法 “증거 없어”

전직 국정원 직원, 면직 취소 소송 제기
법원, 1심에 이어 원고 패소 판결

“국정원 내부에 벽이 하얀 좁은 방에서 사흘 내내 조사받는 고문을 당했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이른바 ‘하얀 방’에서 고문당하고 부당 면직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은 국정원 내 ‘하얀 방’의 존재를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4-2부(재판장 한규현)는 A씨가 국정원장을 상대로 낸 직권면직 취소 소송에서 1심에 이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국정원 외국 공작원으로 근무한 A씨는 2018년 말 면직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앞서 일본 근무 당시 커피전문점에서 1회 한도인 3000엔(약 3만원)을 19차례 초과해 사용했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 내부 감사를 받았다.

A씨는 감사 직후 해리장애 진단을 받고 병가를 쓴 뒤 휴직했다. 그는 휴직 기간이 지났는데도 복귀하지 않았고 결국 면직됐다.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A씨는 재판에서 “감사 당시 벽을 온통 하얗게 칠한 비좁은 방에서 사흘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조사받는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충격으로 해리장애를 앓게 됐으며 자신이 2014년 국정원의 불법 해외 공작을 비판했다가 보복성 감사를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A씨의 이 같은 주장은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문화방송(MBC)의 시사 프로그램 ‘PD수첩’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심 재판부는 보도 내용 등을 포함해 사건을 재차 심리했지만, A씨가 고문을 받았다거나 국정원 내 ‘하얀 방’의 존재를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감사관실이 평소 쓰는 회의실 안쪽에 어른 둘이 서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고 새하얀 밀실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 주장처럼 특이한 구조물이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회의실 내부에 설치돼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관이 바닥에 앉은 채 강압적인 어조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감사관이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 이런 식으로 조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2014년 9월 내부 비판을 제기한 후 보복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A씨가 같은 해 12월 업무성과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은 점을 언급하면서 “감사실 조사가 내부 비판 보복 차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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