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눈물겨운 마을 방과후 에피소드

한은혜 2022. 12. 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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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④] 사라지고, 남겨지고, 다시 돌아올 것들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2023년 1월 12일)을 앞두고, 필수 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고군분투 해 온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계신 필수 돌봄 노동자들의 수고와 존재를 알리고자 8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말>

[한은혜 기자]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1학년은 입학해서 한달 동안 하교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마을 방과후 선생님과 함께 하교를 하고 그 다음에는 친구들과 스스로 하교를 해나간다. 학교 다녀오는 일이 귀했던 몇 년 전 모습이다.
ⓒ 박홍열
몇 년 전,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 이야기를 해보겠다. 코로나19로 학교는 문을 닫자, 마을 방과후는 긴급 돌봄 체제를 가동하며 교사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연장 근무를 이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도 학교에 가지 못한 1학년들이 마을 방과후로 '등교' 대신 '등원'을 했다.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긴급 돌봄은 일년 동안 이어졌고, 그 다음 해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교보다는 마을 방과후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었지만 코로나 방역 지원은 마을 방과후를 빗겨갔다. 그때의 눈물겨운 상황을 담은 에피소드를 공유해 본다.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아이들이 마을 방과후에 등교 하지 않은 날들이 빈번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 가득했던 공간이 텅 비어 있는 풍경.
ⓒ 박홍열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시기에 터전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가정 보육이 가능한 집이나 혼자서도 지낼 수 있는 고학년은 등원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등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들은 소식지와 과자 꾸러미를 준비했다.
ⓒ 박홍열
   
여느 때처럼 부산스럽게 터전으로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뭔가 허전하다. '아! 마스크' 이젠 실제 얼굴보다 더 익숙한 마스크. 코로나로 쓰기 시작한 마스크는 1년이 지나도록 내 얼굴을 덮고 있다. 우리의 얼굴을 덮고 있다.

"1호가 될 순 없어!"

터전에서 누군가 외쳤다. 무슨 말인가 싶어 이유를 들어보니 터전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1호가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모두 조심한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만약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든 상황을 겪을 것을 염려하여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몸을 사린다. 교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도 그러하다. 목을 너무 많이 써서 아플지라도 조금만 칼칼해지면 긴장한다.

뉴스에선 연일 코로나 백신에 대한 이슈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순서로 백신 접종을 할 것인지, 언제부터 맞을 것인지 등에 대한 것들이다. 그런 뉴스들을 접할 때면 사람들은 '어떤 백신을 맞으면 좋다더라, 백신 부작용으로 지금은 맞지 말고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교사들은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화이자, 모더나 등의 백신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백신을 맞고 심한 부작용과 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어, 걱정과 두려움으로 기다려 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최대한 빨리 맞고 안정적으로 아이들과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접종 대상자. 의료기관과 약국 종사자, 사회 필수인력(경찰, 소방 등), 취약시설 입소·종사자, 만성신장 질환자,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 1·2학년 교사 및 돌봄 인력 등이 우선 접종 대상자라고 했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반가움이 더 컸다. '드디어 맞을 수 있겠구나.'

그러나, 우리는 '비인가 초등 마을 방과 후'였다. 나라에서 인정해 주는 어린이집도, 지역 방과 후도, 학교 방과 후도 아니었다. 60명의 아이가 종일 지내는 곳일지라도, 인가받지 못한 곳이라 교사도 인정받지 못한다.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백신 원정기가 시작됐다. 일단, 가까운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본다. 백신에 대한 문의가 한창일 시점이라 통화가 연결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연결됐다. 연결되자마자 "저희는 초등 마을 방과 후인데요. 아이들이 60명 정도 됩니다. 교사 인원은요." "저희도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을까요?" 등등 관계자에게 설명해본다. 구구절절한 설명과는 다르게 간결한 답변.

"당연히 대상자에 들어가지만,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다른 기관에 다시 문을 두드려 본다. 터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이런 전화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출근 전 한 시간 정도 전화를 해본다. 200통. 300통. 통화 연결음만이 애타는 마음을 대변해 준다. 그러기를 며칠. 드디어 통화가 되었다. 다시 시작된 구구절절한 설명. 그러나 들려오는 허탈한 답변 "며칠 전에 부서가 바뀌어서 다른 번호로 하셔야 하는데 어쩌지요?" 허무한 마음을 다잡으며 전화번호를 받아적었다. 그러면서 한 가닥 희망이 될까 싶어 다시 터전 소개를 해본다. "당연히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담당 번호로 연락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흠. 들려오는 연결음을 친숙하게 들으며, 오늘도 불통 횟수 200통.

불통이나마 작은 희망을 놓을 순 없다. 일상의 변화가 터전에서 우리가 아이들과 했던 행동들의 많은 의미를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터전에서 아이들과 했던 자연스러운 하이파이브. 터전에 왔을 때, 집에 갈 때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의 눈을 맞추던 행동들. 가까이 와서 손을 맞대며 서로의 온기를 전하고, 눈을 맞추던 우리만의 의식들은 이제 그저 눈을 마주하는 것으로, 허공에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신하고 만족해야 한다.

점심과 간식을 먹을 때, 우리 풍경의 달라짐 또한 우리가 의미를 두고 있는 것들을 앗아갔다. 음식을 먹기 전 감사한 마음으로 읊던 이현주의 <밥을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도,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던 풍경도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옹기종기 모여앉지도 못한다. 우리가 의미를 두고 했던 행동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게 잊히고 있다. 위태로운 상황에 당연한 행동들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 마을 방과후 활동_공동체 놀이 마을 방과후 아이들도 가끔은 멀리 나가 넒은 공간에서 맘껏 뛰어 놀고 싶다. 긴 나들이로 월드컵 공원에서 가서 모든 학년이 모여 공동체 놀이를 하고 있다.
ⓒ 도토리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날마다 담아낸 사진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매달 마지막 주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나 보다. 낄낄대면서, 저땐 이랬네, 저랬네 말도 많다. 이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 6년이 지나면, 졸업 앨범이 만들어진다. 6년의 시간이 오롯이 담긴다. 이런 소중한 사진들에 이제 아이들의 얼굴이 없다. 이렇게 달라지고 사라진 것들이 많은, 코로나와 함께 하고 있는 시간들. 놀라고, 변화되고, 아쉽고, 사라진 의미들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의미를 두고 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곁엔 끈끈이가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질풍노도의 시기로 바꾸어버리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남아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끈끈이. 서로가 힘들까 걱정하고, 나누고, 배려하는 그런 끈끈한 마음들이 힘든 상황일 수록 우리 곁에 꼭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 끈끈한 마음들은 우리가 의미를 두고 한 행동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글_한은혜(별명:자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어린이 세계에 궁금한 것을 질문하느라 항상 아이들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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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기사는 영화 속에 출연한 도토리 마을방과후 선생님들이 쓰고 엮은 책,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1월 출간 예정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1월 12일 극장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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