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공공기관 인터넷게시판 실명제 5:4 합헌 결정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는 인터넷게시판 이용자들에 대한 본인확인조치 의무를 규정해 실명으로만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앞서 헌재는 2012년 하루 이용자가 10만명 이상인 일반 인터넷게시판 이용자의 본인확인조치 의무를 규정한 같은 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바 있는데, 공공기관의 게시판은 달리 봐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가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는 인터넷게시판의 실명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 1항 1호가 익명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준정부기관, 지방공사, 지방공단 등이 인터넷게시판을 설치·운영할 때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자의 본인확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A씨는 2019년 6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자유토론 게시판과 서울 동작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그 밖에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지방공사 지방공단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올리려고 했지만 각 게시판의 운영자들이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서 곧바로 의견을 게시하지 못하게 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불법정보 게시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 가해자 특정은 인터넷 주소의 추적 및 확인 등을 통해도 할 수 있고 ▲심판대상조항은 게시판 이용자에 적용되는데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본인확인조치 시행 여부를 공공기관의 재량에 맡기는 방안이나 게시판 이용자로 하여금 본인확인이 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별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 게시판 이용자의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다른 수단이 존재하며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익명표현의 자유가 갖는 헌법적 가치 등에 비춰 볼 때 본인확인조치로 인해 기본권이 제한됨으로써 발생하는 게시판 이용자의 불이익이 그로써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더 크기 때문에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돼 익명표현의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본인확인조치 의무는 그 적용범위가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한정돼 있다"며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는 게시판은 그 성격상 대체로 공공성이 있는 사항이 논의되는 곳으로서 공공기관등이 아닌 주체가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비해 통상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더욱 강하게 요구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헌재는 "공공기관등이 설치·운영하는 게시판에 언어폭력, 명예훼손, 불법정보 등이 포함된 정보가 게시될 경우 그 게시판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게시판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공공기관등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본인확인조치를 통해 책임성과 건전성을 사전에 확보함으로써 해당 게시판에 대한 공공성과 신뢰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며, 그 이용 조건으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A씨가 주장한 다른 수단과 관련 "이미 게시된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이나 임시조치, 손해배상 또는 형사처벌 등과 같은 사후적 구제수단이, 정보를 게시하고자 할 때 사전적으로 본인확인을 받도록 하는 심판대상조항과 동일한 정도로 입법목적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이유로 5명의 헌법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등 4명의 재판관은 익명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민주적 함의를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고 있는 공적 영역은 다른 영역에 비해 오히려 익명표현의 자유가 더욱 강하게 보장될 필요가 있는 곳임을 전제로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돼 청구인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헌재가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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