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에 얼굴도 새겨 넣으면서…우리가 몰랐던 세종의 32년
세종의 정치력 다룬 평전 『세종의 고백』 출간
"32년 왕위에 있으면서 실록만 열아홉 권을 남길 정도로 근면성실하고 일을 많이 한 인물이었지만 우리는 정작 인간 이도(李祹, 세종의 이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릅니다. 이도가 왕이 된 뒤 어떻게 정치적 삶을 꾸려나갔는지 들여다봤습니다."
한글의 신비가 살아 있는 한 세종대왕은 끝없는 연구대상이다. 최근 세종 평전 『세종의 고백, 임금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었습니다』(푸른역사)를 출간한 송재혁(43) 고려대 연구교수(아세아문제연구원) 역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송 교수의 세종 평전은 이 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의 동아시아정치사상센터가 펴내는 '조선 초기 군주 평전' 시리즈의 4번째 책이다. 지금까지 태종·세조·성종 평전이 나왔다. '정치 리더의 자격을 묻다'가 시리즈를 관통하는 키워드. 송 교수 평전은 세종의 리더십과 정치력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송 교수는 "세종의 통치 기간 32년 가운데 중반 이후의 업적과 생애는 잘 정리돼 있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이 과거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연구·분석을 통해 자료를 축적하는 데 비해 우리는 만 원권 지폐에 얼굴을 새겨넣을 정도로 추앙한다면서 한글 같은 대표적 업적과 추상적 찬사만 회자되는 형국"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세종의 강점으로 '끈질김'과 '모범'을 꼽았다. 각각 건국과 정변(政變)으로 대표되는 태조(할아버지)와 태종(아버지)의 '비정상의 정치'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일이 세종 앞에 놓인 과제였다. 결과적으로 세종은 결과의 탁월함은 물론이고 절차적 정당성까지 확보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설득, 설득, 설득… 세종의 비결은 끈질긴 공론정치
송 교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공론 정치'가 그런 일을 가능케 한 세종 특유의 통치 스타일이었다고 요약했다. 리더십이 강력하기만 하면 자칫 독단적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 세종도 그런 모습을 일부 보였다. 하지만 "큰 틀에서 자신의 의견을 정해둔 상태에서 신하들 얘기를 최대한 경청하며 구체적인 방향을 수립해나갔다"고 했다. 절대로 공론정치의 원칙을 깨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신하가 있으면 설득될 때까지 계속해서 회의를 했다.
독단의 함정은 어떻게 경계한 것일까. 송 교수는 "세종의 확신은 방대한 공부량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세종 스스로 "이론은 다 안다"고 자부할 정도로 역대 왕들의 통치 관행 등을 빠짐없이 꿰뚫고 있었고, 당대가 요청하는 일의 맥락을 짚어내는 안목도 거기서 나왔다는 것이다. 송 교수에 따르면 세종은 관계지향적 인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인 태종이 "정치의 대원칙을 알고,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인물"이라며 왕위를 물려줬을 정도다. 이런 특성은 설득의 통치학의 기반이 됐다. 송 교수는 "정치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답을 추구하기보다는 평형을 찾는 과정"이라며 "결국 누군가는 손해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보는 하나의 정책 결정을 하기 위해, 몇십 년간 주변의 의견을 구하고 받아들인 세종의 끈질긴 면이 현대의 현실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세종의 삶에서 지금도 유용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끊임없이 설득하라'는 신념"이라며 "세종이 통치한 32년 전체가 설득의 과정이었다. 설득에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설득하고 추진하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통치자가 책임 느껴야 정치 잘 돼… 그게 왕관의 무게"
송 교수는 "요즘 미국 학계에서는 한반도의 과거 왕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라고 했다. 중국 연구에서 비롯된 일이다. 중국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수천 년간 독립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패권을 추구하는 현대의 중국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특히 고려의 공민왕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종 역시 미국 학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왕"이라고 했다.
송 교수의 세종 평전의 표지에는 왕이 썼던 면류관(冕旒冠)이 디자인돼 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통치자가 책임을 느껴야 정치가 잘 된다. 그게 왕관의 무게"라고 했다. 이도는 과연 자청해서 왕이 되려 했을까. 송 교수는 "아버지 태종의 선택으로 왕이 되긴 했지만 세종의 실제 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상상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주어졌으니 걸맞은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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