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전쟁 속 K반도체, 대만·베트남보다 실리 못 챙겼다

박해리 2022. 12. 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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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SMC가 29일 대만 현지 공장에서 양산식을 갖는다.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29일 대만 현지 공장에서 3나노미터(㎚·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 양산식을 갖는다. 최첨단 공정인 3㎚ 제품 양산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탈(脫)대만’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TSMC는 2025년 양산 목표로 3㎚보다 첨단인 2㎚ 공장을 대만 북부 신주 지역에 신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미국 등 해외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TSMC의 탈대만 이슈가 불거졌다. TSMC는 이달 6일 미국 애리조나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의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달에만 일본, 독일 등에 대한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최근 꾸준히 해외 시장을 두드려왔다. 공격적 투자와 해외 고객 유치에 힘쓴 덕에 2018년 9.7%였던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의 점유율은 3년 새 17.4%가 됐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아시아의 새 생산기지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의 미국 시장 점유율도 3배 이상 늘었다. 2018년 2.6%에서 2021년 9.1%로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점유율이 증가했다. 베트남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조립·테스트 공장을 운영 중인 인텔은 지난해 투자를 50% 확대하기도 했다. 베트남 사업무역부는 반도체를 주력산업으로 꼽고 2020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연평균 1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베트남에는 인텔 외에도 일본 르네사스, 주키 등 반도체 기업이 진출해 있다.

주변국들이 미·중 반도체 패권 싸움 속에서 이득을 보는 동안 한국은 실리를 취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른 한국의 기회 및 위협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미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018년 11.2%에서 지난해 13.2%로 늘었다. 2.1%포인트 상승에 그치며 대만(7.7%포인트), 베트남(6.4%포인트), 말레이시아(2.5%포인트)보다 점유율 상승 폭이 작았다. 같은 기간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1%에서 11%로 급감했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관련 품목별 중국 수출 비중은 ▶시스템 반도체 32.5% ▶메모리 반도체 43.6% ▶반도체 장비 54.6% ▶반도체 소재 44.7%였다.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과도한 중국 의존 구조에서 탈피하고 새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21.6%를 차지하는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낮은 연구개발(R&D) 투자 비율과 장비·소재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국내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매출 대비 R&D 비율은 한국이 8.1%로 미국(16.9%), 중국(12.7%), 일본(11.5%), 대만(11.3%) 등 주요국 중 가장 낮았다. 또 한국은 수입금액 1만 달러 이상인 반도체 장비 품목 80개 중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품목이 30개를 차지해 비중(37.5%)이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반도체 소재 역시 특정국 수입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품목의 비중이 한국(18.2%), 대만(16.7%), 미국(7.8%) 순으로 높은 수준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를 현행 6%에서 8%로 늘리는 데 그쳐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구도에 참여해 핵심 장비·소재 수급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R&D 및 설비 투자 지원을 통해 첨단기술 영역에서 초격차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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