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한제' 러 돈줄 죈다는 서구...푸틴 '석유 금수' 보복 명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국에 대해 석유 수출을 금지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산 원유에 유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한 보복 성격이다.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이번 결정으로 내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도 혼란이 예상된다.
로이터통신, CNN 방송 등은 푸틴 대통령이 유가 상한제를 도입한 국가·기업에 대해 석유와 석유 관련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석유 수출 금지 조치는 내년 2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5개월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석유 제품에 대한 금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의 '특별 허가'가 있을 경우에는 판매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달았다.
EU 27개국과 미국·영국·호주·캐나다·일본 등 서방 국가는 지난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유가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배럴당 60달러(약 7만6000원)로 설정된 상한액이 넘는 가격에 수출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서방 국가의 해상 서비스(보험·운송 등)를 금지하는 방안이다. 석유와 가스 수출이 재정 수입의 42%에 달하는 러시아의 전쟁자금 조달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러시아 우랄산 원유가 상한액인 60달러 이하로 거래되고 있는 데다 러시아가 대(對)중국·인도 수출을 늘리고 있어 유가 상한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러시아를 자극하는 효과는 있었다. 지난 23일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가 "유가 상한제 관련 정책을 준수하느니 감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고 경고한 데 이어 나온 석유 수출 금지 발표는 그간 유가 상한제에 강한 불만을 표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러시아의 첫 대응 조치다.
석유 수출 금지 결정에도 27일 국제유가는 큰 상승폭 없이 혼조세로 마감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유럽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전쟁 직전인 2월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의 예상외로 따뜻한 겨울 날씨와 허리띠를 졸라매며 축적한 비축량 덕분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하루 1000만 배럴 가까이 생산되는 러시아산 원유는 세계 석유 시장의 8.3%(2021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어 에너지 시장의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로 전 세계 에너지 공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워낙 높은 데다, 지난 26일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공식 폐기한 중국의 원유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여서다. 겨울 폭풍으로 천연가스관이 어는 피해를 본 미국에서 천연가스 생산량이 회복되는 데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에겐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다니엘 예르긴 S&P글로벌 부회장은 WSJ에 실은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석유 정책으로 유가가 오른다면 최근 주요 고객이 된 중국과 인도 등이 러시아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푸틴에겐 큰 손해"라고 했다. 예르긴 부회장은 내년엔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닥쳐 석유 수요 자체가 감소해 서방 국가들이 푸틴의 예상과 달리 큰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애널리스트 로버트 야거 역시 내년 글로벌 경기침체를 주목하며 "2023년 에너지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건 공급이 아니라 수요 측면이기 때문에 푸틴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라고 WSJ에 말했다.
한편 한국이 수입하는 석유 중 러시아산의 비중은 올 초 5%대였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점차 감소해 현재 1%대로 떨어진 상태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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