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터의 역사' 다시 써내려가는 전성현
[이준목 기자]
▲ 31점 맹활약 전성현 22일 오후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KBL 프로농구' 고양 캐롯과 서울 삼성의 경기. 고양 캐롯 전성현이 팀 동료와 대화하고 있다. 이날 전성현은 전성현은 팀 내 최다인 31점을 기록해 팀의 93-72 승리를 이끌었다. (KBL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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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슈터'로 불리는 NBA(미국 프로농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가드 스테판 커리는 농구 역사를 바꾼 선수로도 꼽힌다. 그의 진정한 영향력은 단순히 개인의 활약을 넘어 빅맨과 골밑 중심의 확률을 중시하던 전통적인 농구에서, 외곽슛과 스페이싱 위주의 트랜지션 게임인 현대농구의 트렌드로 바꾼 결정적인 주역이라는데 있다. 커리는 3점슛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NBA 역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농구도 시대별로 위대한 슈터들을 대거 배출했다.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 문경은, 문태종, 우지원, 조성민, 조성원, 이정현 등이 있었다면, 2022년 현재 KBL을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는 단연 전성현(고양 캐롯 점퍼스)이 첫 손에 꼽힌다.
2013년 안양 KGC에 입단하여 프로 경력을 시작한 전성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김승기 감독과 함께 신생팀 캐롯으로 건너 왔다. 이미 KGC에서도 정상급 슈터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각 포지션에 엘리트 선수들이 즐비했던 KGC와 달리 캐롯은 상대로 전성현을 제외하면 국내 선수 중 이렇다할 스타가 없었다. KGC에서의 전성현이 강팀 퍼즐의 한 조각이었다면, 캐롯에서 1인자로 홀로서기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성현은 개막 직후부터 펄펄 날며 그야말로 역대급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전성현은 현재 올시즌 팀이 치른 25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32분 11초를 소화하며 국평균 20.1점, 3어시스트, 1.2 스틸을 기록중이다. 국내 선수 득점 1위이며, 외국인 선수들을 포함해도 자밀 워니(SK. 23.1점)에 이어 전체 2위다. 올시즌 현재 평균 20점을 넘긴 선수는 리그 전체에 이 두 명뿐이다.
또한 전성현의 올시즌 경기당 평균 3점슛 성공 횟수는 무려 4.1개(누적 102개)에 이른다. 전성현 다음으로 많은 3점슛을 성공시킨 오마리 스펠먼(KGC)이 2.7개에 불과하고 평균 3개를 넘긴 선수가 전무할 정도로 독보적인 격차다. 팀 사정상 상대의 집중견제를 받으며 많은 슛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성현의 3점슛 성공률은 무려 44%(전체 2위)에 이른다, 여기에 2점슛(52%, 야투 45%)과 자유투(88.4%) 성공률까지 더하면 일급 슈터의 상징으로 불리는 '180클럽'에도 거의 근접했다.
커리가 그러했듯이, 전성현 역시 올시즌 KBL에서 '슛'과 '득점'에 관한 다수의 기록을 갈아치울 페이스다. 전성현은 KBL 역대 최고 슈터 중 하나였던 조성원이 2001~2002년(창원 LG) 두 시즌에 걸쳐 작성했던 정규리그 54경기 연속 3점슛 성공 기록을 단숨에 뛰어넘어 무려 66경기까지 늘렸다.
또한 전성현은 27일 KGC와의 안양 원정경기에서 3점슛 5개를 포함해 23점을 넣었다. 팀은 비록 82-84로 석패했으나 전성현은 25경기 만에 3점슛 성공 100개를 돌파하며, 역시 2000∼2001시즌 조성원이 기록했던 26경기 103개를 뛰어넘어 '역대 최소 경기 세 자릿수 3점슛 달성' 기록도 갈아치웠다. 전성현은 이날 9경기 연속 20득점 이상 기록도 이어갔다.
▲ 전성현 슛 22일 오후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KBL 프로농구' 고양 캐롯과 서울 삼성의 경기. 고양 캐롯 전성현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KBL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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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현이 지금의 3점슛 페이스를 이어간다고 했을 때, 약 200~220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시키는 게 가능하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54경기 체제가 자리잡은 이래 한 시즌에 200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시킨 선수는 아직 전무하다. 기존 역대 최고 기록은 2003∼2004시즌에 우지원(당시 울산 모비스)이 기록한 197개였지만 이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타이틀 경쟁을 위한 고의적인 '몰아주기'가 포함된 불공정한 기록이라 사실상 의미가 없다.
'국내 선수 득점왕과 평균 20점' 기록도 의미있는 도전이다. KBL 역사에서 국내 선수의 득점왕과 마지막 평균 20점 기록은 모두 문태영(은퇴)이 보유하고 있다. 귀화혼혈선수인 문태영은 LG에서 뛰던 2009-2010시즌 21.9점으로 득점왕에 올랐고, 이듬해인 2010-2011시즌에는 22점(전체 2위)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로 10년 가까이 국내 선수가 20점을 넘긴 사례는 전무했다.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국내 선수도 평균 20점을 넘기는 경우가 자주 나왔다. 프로농구 1세대인 서장훈, 현주엽, 문경은, 조성원, 김영만, 방성윤, 전희철 등은 국내 선수로 시즌 평균 20점을 넘긴 선수들이다. 서장훈은 유일하게 20점대 평균 득점을 기록한 시즌만 무려 6차례에 이르며, 조성원은 2000-2001시즌 25.7점(전체 5위)로 국내 선수 한 시즌 최고 평균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비전술의 발전과 농구 트렌드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2000년대 중반 이후 리그 평균 득점은 하락하는 추세다. 외국인 선수도 평균 20점을 넘기는 선수가 드물어졌다. 국내 선수만 놓고보면 평균 15~16점 정도만 되어도 1위를 노릴 수 있는 시대다. 지난 2021-2022시즌 국내 선수 평균 득점 1위였던 이대성(현 가스공사)은 17점을 넣었고, 2020-2021시즌 1위 허훈은 15.6점에 불과했다. 올시즌 전성현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수준인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프로농구에서 국내 선수가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1옵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서장훈-방성윤-문태영 이후로는 전성현이 사실상 최초다. 이들에 비하여 전성현은 운동능력이나 스피드가 딱히 뛰어나지 않음에도, 간결하고 효율적인 움직임, 동료들의 스크린을 활용하는 능력만으로 많은 득점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 수비수를 달고도 3점슛을 꽂아넣을 수 있는 정교함은 전성현이 슈터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현재 득점왕은 선두 워니와 다소 격차가 있지만, 평균 20점은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기록이다. 전성현은 평균 20점을 넘긴다면 해외파인 문태영을 제외하고 순수 국내 출신 선수로는 2007-2008시즌 방성윤(22.1점) 이후 무려 14년 만이다.
전성현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 캐롯도 13승 12패로 5위를 기록하며 창단 첫해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2연패를 당하며 주춤하기는 하지만, 당초 하위권 후보로 꼽히며 저평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선전이다. 캐롯이 올시즌 6강에 진출한다면 전성현은 올시즌 가장 유력한 MVP 1순위다.
올시즌을 기점으로 전성현의 눈부신 활약상은 그동안 한국농구를 빛낸 역대급 슈터들을 잇달아 소환하여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옛날만큼 대형 슈터가 없다는 이야기가 정말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한국농구에, 모처럼 '슈터 에이스' 계보를 이을 적자로 등장한 전성현의 존재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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