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중공업 안녕”…‘정기선 색깔’ 입은 HD현대, 본격 출항

오수진 2022. 12. 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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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이미지 던져버린 HD현대…50주년 맞이 새출발 알려
‘신사업에 진심’ 정기선 체제 본격 출항…신사업 투자 급물살 타나
로벌 R&D센터(GRC) 조감도 ⓒHD현대

현대중공업그룹이 ‘중공업’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오너 3세 정기선 사장의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룹의 정체성과도 같던 사명을 20년 만에 바꾸고, 차기 그룹 총수로서의 ‘정기선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린 것이다. 뿌리 깊게 박힌 고리타분한 굴뚝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출항의 뱃고동을 울렸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6일 50주년 비전 선포식과 함께 HD현대로의 새그룹명 변경을 공식화했다.


HD현대는 ‘인간이 갖고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룹의 태생은 조선업이지만, 새 그룹명에서는 조선업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떠오릴 수 없게끔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는 ‘시대를 이끄는 혁신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인류의 미래를 개척한다’는 미션과 함께 이를 실현하기 위한 3대 핵심 사업 비전도 제시됐다.


조선해양 부문은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 실현’, 에너지 부문은 ‘지속 가능한 미래 에너지 생태계 구현’, 산업기계 부문은 ‘시공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산업솔루션 제공’을 새로운 비전으로 삼고 미래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이는 기존 틀에 박힌 이미지를 깨버리겠단 HD현대의 결심에서 이뤄졌다. 조선업에서 출발한 HD현대가 현재 인공지능(AI), 로봇, 수소 등 분야도 아우르고 있어 다양한 산업을 포괄하는 광의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HD현대 관계자는 “과거의 심볼은 범현대 기업 다수가 사용하고 있어 HD현대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HD현대의 수익을 새 CI의 브랜드 인지도 향상 및 대외 이미지 제고에 사용해 계열사들의 사업기회 확대, 우수인재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취임 후 신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나선 정기선 사장의 기조와도 맞물린다. 정 사장의 신사업에 대한 뜻은 확고하다.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기존 주력 사업인 제조업을 뛰어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유지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발 더 도약시키겠다는 젊은 후계자로서의 의지도 읽힌다.


지난 26일 경기도 판교 GRC에서 열린 HD현대 50주년 비전선포식 장면 ⓒHD현대

실제 정 사장 취임 후 HD현대의 신사업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다. 정 사장은 아비커스를 깜짝 방문해 임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즐겼을 정도로, 아비커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아비커스는 지난 2020년 12월 HD현대 사내벤처 1호 기업으로 출범 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율운항 기술을 통한 대형 선박의 대양횡단에 성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SK해운과 장금상선 등 국내 선사 2곳으로부터 대형선박의 자율운항 솔루션(HiNAS 2.0)'을 수주해 세계 최초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을 상용화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자율운항 선박 회사 협의체인 ‘원씨(One Sea)’에 가입하는 등 미국·유럽·일본의 자율운항 선박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HD현대의 변화는 그룹명뿐만이 아니다. IT기업의 텃밭 경기도 판교에 새 둥지를 텄다. 선포식도 이곳 글로벌 R&D센터(GRC)에서 열렸다.


GRC는 연면적 5만3000평, 지상 20층, 지하 5층 규모를 갖췄다. HD현대, 한국조선해양, 현대제뉴인, 현대오일뱅크 등 총 17개사가 입주했으며, R&D․엔지니어링 인력 등 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미래 기술경영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GRC는 그룹의 기술력을 한 곳으로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그룹의 제품 개발 관련 기초연구를 포함해 미래 신사업을 창출하는 신기술 확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 등이 HD현대 50주년 비전선포식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부회장, 권오갑 회장, 정기선 사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 ⓒHD현대

새 그룹명과 함께 미래 사업 추진도 탄력 받을 전망이다. HD현대는 그룹의 미래 50년을 책임질 핵심 토대를 다지기 위해 향후 5년간 총 21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우선 스마트 조선소 구축과 건설 분야 자동화, 무인화 기술 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스마트 건설기계 인프라 구축, 스마트 에너지사업 투자 등에 12조원을 투자한다. 친환경 R&D 분야에는 총 7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조선 사업 분야에서는 친환경 선박기자재, 탄소 포집 기술, 수소·암모니아 추진선 등 수소 운송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건설기계 분야는 배터리 기반의 기계 장비를 개발하고,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는 탄소감축 기술과 친환경 바이오 기술 개발 분야에 집중할 전망이다.


자율운항 선박과 연계된 디지털 분야에는 총 1조원을 투자한다. 제약·바이오 분야 진출 기반을 다지기 위한 혁신기업 M&A나 유망 업종 지분 투자 등에도 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HD현대 관계자는 “회사가 50주년을 맞아 새출발을 하게 됐다”며 “한 가지 사업뿐만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신사업을 개척하는 그룹으로 본격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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