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뮤지컬엔 없는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뿌리

이종길 2022. 12.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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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日군 인도적 대우 실화 공들여
단지 동맹의 근원이자 인간적 고뇌의 시작
기존 사상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표면화도

영화 ‘영웅’에는 원작인 동명 뮤지컬에 없는 장면이 있다. 의병 안중근(정성화)이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주는 신이다.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대들의 말을 들어보니 ‘충의지사(忠義之士)’라고 일컬을 만하오. 이제 마땅히 그대들을 석방해 돌아가도록 할 것이오. 돌아가거든 그대들이 말한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들을 쓸어버리도록 하시오.”

죽을 고비를 넘겨온 전우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전과·전의 상실을 떠나 아군에게 위험이 될 수 있었다. 안중근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늘날의 만국공법에 포로를 죽이는 법은 절대 없소. 어딘가 가둬두었다가 뒷날 배상받고서 돌려보내는 법이오. 게다가 그들의 말은 진정에서 나온 의로운 것이었으니, 어찌 놓아주지 않을 수 있겠소? (…) 우리도 야만의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일본의 4000만 인구를 모두 죽여서 국권을 회복하려고 계획하는 것이오?” 설득은 끝내 통하지 않았다. 내부 분열만 커진 부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습격받고 대패했다.

윤제균 감독이 일련의 사태에 공들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영웅’은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저격 전후에 무게를 둔 원작 뮤지컬의 뼈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태생적으로 동양평화론 등 남다른 신념을 가지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에 취약하다. 인도적 대우가 빚은 참사는 이런 약점을 메우기에 더없이 좋은 이야기다. 도입부에 배치한 단지 동맹의 근원이자 인간적 고뇌의 시작으로 읽힐 수 있다. 윤 감독은 “안중근은 의사(義士)이기 이전에 군인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회령 전투는 안중근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살당하는 동지들을 보며 다양한 감정에 가슴이 짓눌렸을 거다. 괴로워하고 번뇌하면서도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여전히 일본군 사살에 의의를 둔 동지들을 안타까워했다. 의병 활동으로는 진정한 독립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스스로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독립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 안중근에 대한 입체적인 조명은 물론 주제 의식까지 강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주제 의식은 이토 저격 뒤에 베일을 벗는 동양평화론이다. 20세기 초 많은 아시아의 지식인은 침략적 서구 제국주의에 아시아가 연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는 자칫하면 침략주의가 정당화될 위험이 숨어 있었다. 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토다. 무력을 통해 일방적 병탄을 강제했다. 안중근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평화까지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일본이 취해온 정책은 20세기에는 모자라기 짝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래에 외국에서 써오던 수법을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약한 나라를 병탄하는 수법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패권을 잡지 못한다. 아직 다른 강한 나라가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

일본의 평화론은 주권 포기 종용은 물론 무력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수직적 통합이었다. 안중근은 진정한 동양의 평화와 발전은 수평적 통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중·일 세 나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동양평화회의체를 만드는 방법까지 제안했다.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보고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아시아 금융통화협력'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회의체에 대한 구상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과 관련해 당시 아시아 제일의 강대국인 일본에, 첫째, 재정을 건전하게 하고 둘째, 세계 각국의 신뢰를 얻도록 하며, 셋째, 일본의 약점을 노리고 있는 서구 열강에 대응을 주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이처럼 안중근의 평화구상이 실현된다면 오늘날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가 아시아에서도 출현할 수 있다고 보인다. 지역공동체란 관점에서 안중근의 동양평화회의체 구상을 살펴보면 정치협력, 금융협력, 안보협력의 3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아시아의 평화 정착은 재정, 금융협력을 통한 경제협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협력을 통해 정치적 협력으로 나가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통합과정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탁월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구상이라 하겠다.”

윤 감독이 만국공법을 강조한 또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어지는 이토 저격과 동화평화론 저술을 기존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표면화했다. 만국공법은 동양평화론의 기본 전제나 다름없다. 중국에서 윌리엄 마틴(1827~1916)이 미국 법학자 헨리 휘튼(1785~1848)의 '국제법 원리(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를 번역해 출간한 이래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줄 도구로 기대를 모았다. 제국주의가 득세한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웠으나 이상적 질서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자주 언급됐다.

학계는 포로수용소도 없던 의병 부대에서 안중근이 만국공법을 고집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의병이 국제사회에서 정규군으로 공인받기를 원해서다. 의병이 정규군이라면 한국 또한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둘째는 그것이 올바른 덕목, 즉 인(仁)의 정신 구현이라 믿어서다.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저서 '안중근 평전'에서 “'인'의 덕을 지키면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볼 수 있다”라면서도 “멀리 보면 가장 바람직한 상태, 즉 국가 간의 평화를 보장하는 질서로 나아가는 길일 수 있다. 적어도 현실이 아닌 이상의 차원에서는 그렇다”라고 기술했다.

윤 감독은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이상을 구체화하는 도구가 되길 기대한다. 지금도 소용돌이치는 역사 현장을 가리키며 동양평화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류 역사에서 강대국의 침략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수직적 통합을 피한 나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금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우리 눈에 보이질 않을 뿐 곳곳에서 제국주의가 꿈틀거린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긴장을 나라 간 대립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안중근처럼 침략주의적 경향을 가진 이들을 가려내고 배척해야 이상적 세계관에 다가갈 수 있다. 분별력과 안목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중요시해야 한다. 미적분이나 영어 문법도 중요하겠지만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 과정을 기억해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새로운 역사를 맞이할 준비이자 자세이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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