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유혹, 눈 호강 뮤지컬 ‘물랑루즈!’ [쿡리뷰]
공연장에 들어서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붉은 무대가 관객을 반긴다. 객석 2층 양옆에선 거대한 코끼리 모형과 풍차 모형이 위용을 뽐낸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10여개도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사전 제작비만 395억원.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니 어워즈에서 10관왕을 차지한 뮤지컬 ‘물랑루즈!’가 지난 16일 한국에 상륙했다. 화려한 무대와 반짝이는 의상, 귀에 익은 팝송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배경은 1899년 프랑스 파리. 유명 나이트클럽 물랑루즈의 간판 배우 사틴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돈 많은 몬로스 공작을 꾀어 재정 위기에 처한 물랑루즈를 살려야 한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그에게 몬로스 공작 꼬여내기는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으나, 이게 웬일. 가난한 예술가 크리스티안이 끼어들며 연애 사업에 말썽이 벌어진다.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두 영혼 사틴과 크리스티안은 비극을 향해 질주한다.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물랑루즈!’는 관객에게 눈 호강을 제대로 시켜준다.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형형색색 조명, 16벌이나 되는 사틴의 빛나는 의상이 단숨에 탄성을 자아낸다. 진짜 매혹은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단장 헤롤드 지들러 가라사대, 물랑루즈는 영혼이 요동치고 가슴 속 판타지가 은밀하게 눈을 뜨는 곳. 이곳에선 욕망과 욕망이 거래되고 자유와 예술이 피어난다. 사랑과 배신, 자유와 집착이 꿈틀대며 물랑루즈의 관능과 역동을 완성한다.
유명 팝송을 매시업(서로 다른 곡을 합쳐 새로운 곡을 만드는 방식)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한다. 시작은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명곡이자 동명 원작 영화에도 삽입된 노래 ‘레이디 마멀레이드’. 물랑루즈의 네 배우가 “헤이 시스터, 고 시스터, 솔 시스터, 플로 시스터”(Hey sister, go sister, soul sister, flow sister)라고 속삭이며 긴장을 고조시킨 뒤, 일명 ‘캉캉 송’으로 흥겨움을 터뜨린다. 배우들은 춤 실력도 수준급이다. 오리지널 창작진과 한국 제작진은 7개월 넘게 연 오디션에서 고난도 춤을 소화할 배우들을 선발했다.
감동은 1막 마지막을 장식하는 ‘코끼리 사랑 메들리’에서 정점을 찍는다. 엘비스 프레슬리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 위드 유’, 데이빗 보위 ‘히어로스’, 퀸 ‘플레이 더 게임’ 등 명곡을 지나 사틴과 크리스티안이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를 합창할 땐 가슴이 벅차오른다. 작품에는 팝송 약 70곡이 사용됐다. 각 노래에 얽힌 권리 관계를 풀어내는 데만 1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원작 영화에 사용된 ‘유어 송’ ‘컴 왓 메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원작 서사를 벗어나지 않아 다소 뻔한 이야기에 변주를 주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물랑루즈!’ 오디션에 가장 먼저 지원했을 만큼 작품이 간절했다는 사틴 역의 배우 김지우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등공신이다. 관능적인 자태로 상대를 유혹하다가도, 지친 목소리로 ‘불꽃’을 불러 사틴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크리스티안을 맡은 홍광호는 ‘록산의 탱고’에서 육중한 성량을 뽐내 명성을 입증한다. 원작을 연출한 바즈 루어만 감독은 지난 20일 공연을 본 뒤 “한국 프로덕션은 유독 감정선이 진하고 페이소스가 많이 느껴진다”며 “배우들의 가창력이 뛰어나다. 크고 화려한 연기부터 낮고 조용한 내면 연기의 대조를 훌륭하게 해낸다”고 칭찬했다.
팝송을 한국어 가사로 번역해 일부 곡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원곡의 아우라가 워낙 강렬해 편곡된 뮤지컬 음악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약점이다. 크리스티안의 순정은 종종 조급하고 때로 위험하다. 그래도 연말과 연초를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은 관객, 특히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라면 후회 없을 작품이다. 공연 전후로 빈 무대를 촬영할 수 있어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제격이다. 본공연 10분 전부터 펼쳐지는 프리 쇼도 놓치지 말자. 배우들이 입에 칼을 넣는 묘기를 선보인다. 공연은 내년 3월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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