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대표 배우 주지훈이 ‘젠틀맨’으로 드러낸 영화를 향한 진심 [일문일답]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를 향한 열정과 애정이 이보다 큰 배우가 있을까 싶다. 충무로 대표 배우 주지훈은 작품에 들어가면 그저 연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프리프로덕션 작업부터 촬영 전 모든 회의까지, 전면에 참여해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신의 톤 앤드 매너까지 고민한다.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한 터라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에게 가끔 ‘대본 안보고 자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완성해내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막을 수 없다.
28일 개봉하는 ‘젠틀맨’은 주지훈이 4년만에 주연으로 나서는 작품으로,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 분)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다. 거대 로펌 재벌의 추악한 범죄를 파헤치며 정의를 구현하고자 나아가는 인물들의 면면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대리 쾌감을 선사하며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그동안 영화 ‘암수살인’, ‘공작’,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롯해 드라마 ‘지리산’, ‘하이에나’, ‘킹덤’ 스크린과 극장을 오가며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주지훈이 이 작품에서는 의뢰받은 사건은 100% 처리하는 흥신소 사장으로 분해 새 맞춤옷을 제대로 입었다.
2006 MBC 드라마 ‘궁’으로 배우 데뷔해 어느덧 17년 차를 맞이한 프로 배우 주지훈이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장르의 매력이 잘 쓰여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출연하고 싶다”면서 “잘 쓰인 글은 용기를 준다”고 신중하게 답했다.
-4년만 영화인데. “반갑다. 모든 것이 너무 오랜만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출연을 결정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세상이 바뀌었다. 혼자서 작품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제작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감독의 설명에 확신을 얻었다. 77억을 들여 만든 예산이 적은 영화다. 예전 기준으로 40억짜리 규모다. 이 규모에 이 이야기였던 게 매력 포인트였다. 같은 스토리에 규모가 더 컸다면 출연을 고사했을 것이다. 큰 작품을 많이 하는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좀 웃기지만 이 정도 사이즈 영화가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길 수 없는 존재에 강하게 맞서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는데. “우리 영화는 허술하고 힘이 없는 자들이 거대한 힘에 맞서 이겨나가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 판타지스럽다. 관객에 설득력을 주려면 영화의 전체적 톤 앤드 매너가 현실적이어야 했다. 이 스토리를 이런 분위기로 풀어낸 영화, 내 기억에 국내에 없었다.”
-결말은 마음에 들었나. “인물들이 엄청난 휴양지에 가서 돈을 뿌리는 결말이 아니라 좀 더 정의롭게 끝난다. 나라면 수수료와 인건비 정도는 떼지 않았을까 싶다. (웃음)”
-관객의 눈에 현수가 어떻게 보였으면 했나.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삼촌이나 옆집 아저씨, 아는 오빠나 형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흥신소 사장을 표현하고자 외적으로 들인 노력이 있다면. “흥신소 사장이지만 검사처럼 보이는 깔끔함도 있어야 했다. 고객을 위해 저녁에 접대도 하지만 자기관리도 하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운동을 어마어마하게 했지만 복근은 보이지 않게끔 했다. 일상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르 영화 안에서 튈 것 같은 메이크업은 안 했다. 새우 과자처럼 손이 가는, 이왕이면 내 옆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는 캐릭터였으면 했다.”
-강아지 윙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천재견이다. ‘빨리 가줘, 느리게 가줘’를 다 알아듣더라. 그 친구 덕분에 촬영이 빨리 마쳤다. 고양이들이 먹는 츄르를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레디, 액션을 외치는 텀에 이미 개는 미쳐있었다. 얼굴을 너무 핥아서 떼어놓으려고도 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과 가장 다르게 나온 장면이 있었다면. “초반 차 사고는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한 것과 완전 반대로 나왔다. 그 장면은 버전을 10개 찍었는데, 위트가 더 만개했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전체 톤을 따라가는 더 유쾌한 장면으로 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품에 많은 목소리를 내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데, 본인 의견으로 살아난 장면도 있었나. “모텔에서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장면을 보면 내가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신인데 나중에 콘티에 없어졌더라. 배우의 안전을 위해 뺐다는 느낌이 왔다. 감독이 ‘굳이 위험성 있는 장면을 찍어야 할까’ 물어 바로 괜찮다고 답했다. 잠깐 매달려 있는 것이라 위험하지도 않았다. 현수가 모텔 외부로 나와서 답답함을 깨는 역할도 한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권도훈 역에 박성웅을 바로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나. “권도훈 역에는 등장만으로 압도감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싶었다. 그 부분에서는 박성웅이 최고급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나.”
-믿고 보는 배우 주지훈이 생각하는 매력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 “영화, 드라마 장르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타입이다. 작품을 보는 것이 프로 배우로서 공부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삶의 짐을 덜어주는 게 크다. 장르마다 영화는 매력이 있다. 그 장르의 매력이 잘 쓰여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출연하고 싶다. 잘 쓰인 글은 용기를 준다. 아무래도 이제는 프로니까 장르에 맞게 어느 수준 이상으로 쓰여 있으면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온다.”
-필용(이달 분)의 맨발 달리기 장면이 이 영화를 표현하는 결정적 장면 같았는데. “관객에게 흥미를 줘야 하는 오락 영화라 쾌감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3분의 2 정도 흘러, 관객이 지루함을 느낄 때쯤에 해당 장면이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또 신마다 주인이 있다. 이를 모두가 살려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영화가 살아야 배우도 오래 갈 수 있다. ”
-첫 고정 예능으로 하정우와 ‘두발로 티켓팅’을 맡은 소감도 궁금하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예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 장르, 새 작품을 찍는 느낌이다. 정우 형이 워낙 예능에서 얼굴을 비친 적이 없었는데 이건 재밌어 보인다고 했다. 익숙한 얼굴들과도 함께 한다. 진구도 예전에 아역으로 만난 적이 있고 민호도 인연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품을 보는 눈이 배우 그 이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감독, 제작에는 관심 없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미있다. 현장에서 감독이 되어 진두지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 이후 골방에 갇혀 편집하는 건 못 한다. 발굴해서 제작하는 것까지 괜찮다. 특히 ‘하이에나’를 찍을 때 열정 최고 레벨이었다. 감독과 두평짜리 사무실에 앉아서 12시간을 이야기했다. 가끔 오해도 받고, 동료 배우들 사이에 ‘주지훈은 현장에서 대본 안 보고 자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촬영 전 회의까지 다 들어가는데 현장에서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성웅이 형도 ‘주지훈 연기 대충 한다’고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관객에게 관람 포인트를 준다면. “명백한 오락 영화다. 분석하기보다 그냥 즐기러 가면 좋을 것이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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