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올해 무슨 기억을 남겼는가를 돌아보라
한 해가 또다시 저물어 간다. 올해도 수많은 일이 있었다. 팬데믹의 여파가 고금리에 고물가라는 무서운 충격을 일으키는 와중에 밖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겹쳐져 세계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고, 안으로는 제 편만 돌아보는 정치가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우리 삶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많은 이에게 삶은 편안하기보다 힘겨웠다.
그러나 고난과 어려움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벅찬 기쁨과 즐거움도 때때로 찾아와 우리를 위무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영국의 의사이자 작가 올리버 색스는 우리 삶이 기억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야만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 이성과 감정, 심지어 우리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어떤 기억을 남기느냐에 따라서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올해 겪은 수많은 일도 대부분 시간의 강물 속으로 녹아 사라지고, 몇몇 조각만 남아서 우리 마음과 주변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우리 마음에 간직한 기억이 곧 우리 자신을 이룬다. 지금쯤 한 해를 돌이켜 어떤 기억이 남았는가를 살피면, 올해 얼마나 의미 있게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인생의 의미는 삶의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목적을 잃은 삶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공허만 남길 뿐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는 시간 속의 삶이란 대단하고 화려해도 한낱 허무한 먼지에 불과하다. 인생의 기억은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답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만 우리 안에 쌓인다. 우리가 비틀비틀 방황하고 고민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면서도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에 따르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식욕, 성욕, 권력욕 같은 세속적 문제에 갇히면 안 된다. 이런 욕망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안과 고립, 근심과 걱정, 냉소와 공허 등에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의미의 지도는 더 높은 차원의 도덕적 의무를 좇기 위해서 이런 욕망을 억제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생겨난다.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오래 남을 기억을 얻으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숭고한 정신적 삶을 지향하는 영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영혼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피릿(spirit)은 ‘숨결’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은 신이 바람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임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신이 숨결로써 우리에게 보내는 영적 신호이다. 이 허무한 세계 속에서, 더 나아가 자기 안에서 신의 숨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궁극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영성이다. 나날의 삶에서 신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이처럼 더 커다란 질서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삶의 허무를 떨치고 단단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일상 곳곳에서 신의 숨소리, 우주의 속삭임, 자연의 목소리, 공동체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과 함께 격려받고 고양될 수 있다.
삶의 순간마다 늘 신이 곁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함부로 시간을 낭비하지도,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도 못한다. 살아가면서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칼라일은 말한다. “오늘이라고 불리는 동안에는 노력하라. 아무도 노력할 수 없을 때 밤이 찾아오리니.” 어느덧 한 해의 밤이 가까웠다. 올해 무엇을 내 안에 남겼는가를 돌아보면서 새해를 준비할 때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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